이혼하고 혼자 간병인으로 살아가는 선애.
친정의 집엔 부모와 결혼한 남동생, 막내 여동생이 있다.
가까이 가면 상처를 주고 달아나려고 하면 죄책감으로 짓누르는 그런,
엄마가 쓰러졌다. 아버지와 두 동생이 있지만, 선애는 모든 보살핌을
도맡게 된다. 퇴원이 가까워질 무렵 엄마가 치매 증세를 보인다.
가족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만 모든 책임을 선애에게 떠넘긴다.
이번에도 선애는 거절하지 못했다.
엄마의 병세는 점차 악화되고, 최선의 서포트를 하겠다던 가족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한계에 다다른 선애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질문을 엄마에게 던진다. 이제 선애는 엄마를 온전히
끌어안을 것인지 완전히 끊어버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강아지를 통해 알게 된 해양선원인 해원이 선애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온다. 선애는 아주 의아하게 생각하며 자신은 나이가 많고 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남자가 머잖아 돌아오면 선애의 동반자가
될 기대를 주면 막이 내린다.
"나는 내가 싫어요"
연극 '선애에게'는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가족 구성원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학대당한 선애는 해준 것은 없지만 바라는 건 많은 가족들에게 휘둘린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선애는 자신의 몸이 아프고 엄마에게 쌍욕을 들으면서까지도 엄마를 혼자 돌본다. 가족들은 모든 책임을 선애에게 떠넘기고 선애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자신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임을 떠넘긴다. 아버지의 바람과 고된 시집살이로 인해 엄마와 아버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고관절 수술을 받고 경도 인지장애가 생긴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각종 산악회와 모임을 즐기며 집 밖으로 나다닌다. 그러면서 선애에게 엄마를 더 신경 써라, 나중에 후회한다라며 선애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자기만 생각하는 다른 형제들도 화나지만 아버지가 제일 밉다. 사랑은 주지 않고 책임만 강요하는 부모들이다.
선애에게는 말끝마다 쌍욕을 퍼붓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지만 아들인 진상과 막내딸 정애에게는 절절맨다. 만만한 자식 선애에게 막대하는데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선애가 요양보호사로 돌보는 노인은 돈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딸 때문에 집을 팔려고 한다. 선애는 노인에게 패악질하는 딸을 말리다가 몸싸움을 하지만 노인이 프라이팬으로 때려 눈이 시퍼렇게 멍든다. 나쁜 딸이지만 딸이 위험해지니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게 엄마인가 보다.
선애는 K-장녀이다. 결혼하고 너 낳은 후에 되는 게 없다는 엄마의 폭언을 매일 듣는다. 그러면서 다른 자식들은 눈치 보고 쩔쩔매면서 선애에게는 쌍욕을 막 날린다. 마흔은 넘어 보이는 선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을 당한 것 같다.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답답하다. 그나마 강아지를 통해 알게 된 해원이 그녀에게 다가와 조금은 희망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 - 이정 (2024 <구덩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너에게 전하고 싶은 이 이야기가 정작 너에게는 가닿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여유가 없을 테니까. 언제나 바쁘고 빠듯할 테니까. 지금도 지쳐 있을 테니까. 너의 엄마와 너의 가족은 너를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물으면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고, 그냥 내 팔자가 그런 것 아니겠냐고, 그런가 보다 해야지 별수 있냐고 바보처럼 천사처럼 넌 웃고 말겠지. 너의 인생이 잘못되어 가는 줄 모르고, 문제가 있다면 너 자신한테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선애야.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를 싫어 해도 괜찮아. 가족과 멀어져도 괜찮아. 너만 생각해도 괜찮아. 원한다면 다 버리고 앞만 보고 가도 괜찮아. 너는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겠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너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너 자신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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