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현화 '0.917'

clint 2025. 3. 14. 17:24

 

 

비 오는 어느 날 밤, 중년에 접어든 한 남자가 숙직실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이 때 난데없이 깜찍하게 생긴 소녀가 비에 젖어서 찾아온다.

그는 이 젊은 소녀를 집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소녀는 말을 듣지 않고 남자를 유혹한다.
이 남자는 중년에 접어든 이 날까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왜 살아 왔는가,

50대 후반의 한심스런 정년퇴직을 앞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될 즈음 밤참으로

샌드위치를 가지고 부인이 숙직실로 찾아오자 당황한 이 남자는 소녀를 소파에

급히 숨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것은 하나의 환상이었을 뿐이다.

그는 어느덧 현실로 돌아오는데 소녀의 웃음소리가 기적 소리처럼 울리며

자신을 비웃는 것이다.


얼음의 비중은 물의 0.917배 지난 1977년에 발표한 이현화의 ‘0.917’ 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세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형식으로구성한 연작희곡으로서 각장면마다

독립성을 구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면마다 독립성을 부여해서 독립된 3개의

이야기로 형상화할것이냐-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로 고민을 한 작품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나와서 아주 당돌하고 노골적이게 남자에게 애무를 강요한다.

남자는 어린 여자애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여자아이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극작가 이현화의 희곡은 주로 잔혹극 또는 엽기극 이라고 불린다.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  0.917도 굉장히 엽기적이다.

어린애를 창녀로 내세워 자신의 몸을 자해한 뒤 흐르는 피를 입으로 닦아달라는 부분은

메우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아직 어린이에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가 당돌하고 그렇게

노골적이게 남자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 작품의 그 어린 여자애는 남자가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부인이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온다고 기다리는 남자. 그 숙직실에 어린 여자애가 등장한다. 과연 이 여자아이가 정말 현실속에 등장하는 애인지 그것부터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여자애는 남자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 작품 제목이 왜 0.917인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으나 이젠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음의 비중은 물의 비중의 0.917 배이다. 즉 동일한 무게의 물과 얼음의 부피를 비교해 보면 얼음의 91.7%가 물 속에 잠겨있다. 물 속에 잠긴 진실의 양은 우리가 겉으로 보는 현실과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 보여지는 진실과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얼음이 다 녹아도 물의 부피는 이전과 똑같다는 물리적 관점에 적용하여 잠재한 인간 본연의 심리를 다루고자 했던 이 공연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1984년 극단 쎄실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여자 아역배우의 노출문제와 성적학대 문제로 까지 번져 여성단체와 매스컴의 질타가 있었으나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 연극계에서는 우호적이었다. 오히려 그런 매스컴의 비판이 홍보효과로 이어져 관객들이 넘치자 10차례 이상 연장공연을 단행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