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천영 '인간주차'

clint 2025. 3. 10. 16:27

 

 

대단지 아파트 지하 3층 주차장.
이곳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다. 은색 봉고차에서.
이들 부자는 차 안에서 생활의 지혜와 경비원과의 친분으로 
무탈하게 생활하며 주민들에게 소소한 장사까지 한다.
그러나 집주인의 월세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자 자동차 앞좌석을 
세놓기로 결정한다.
싼 임대료에 청년 몇명이 집을 보러왔다가 차에서 자는 걸 알고
난색을 표한다. 우연히 찾아온 소녀가 앞좌석에 세들어오겠다고 한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소년의 고교 친구다.
가끔 이곳에 와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던 소년과 소녀이다.
아들은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안 파는 걸 알고 대리심부름을 해주고
웃돈을 받는다. 근처 편의점에 야간 알바를 뛰고 있기에.
소녀가 여기에 잠시 있으려하는 이유는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소녀가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당장 애를 떼야한다고 여기저기 알아
보는데, 소녀는 애를 낳고자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엄마가
잠잠해질 때까지 있기로 하고, 그대신 아들에게 운전연습을 시켜준다.
그리고 가을 비가 세치게 내리는 오후, 아버지의 결단으로
지하주차장에서 나온다. 비 때문에 모두 차를 지하에 주차하려는데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이 비에 지하가 잠길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아버지도 곧 택시를 다시 몰려고 준비한단다. 경력 30년의 배테랑으로
다시 시작해 보려는 것이다.

 


빈부 격차의 심화, 학생들의 탈선과 문란한 성관계, 아파트 주민의 갑질,
노인 문제 그리고 경비들의 무책임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제기되지만 
여기에선 유쾌하고 재밌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재미있고 

또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아버지와 잔머리를 

잘 굴리는 아들은 대조적이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깊게 보인다.



작가의 말 - 송천영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2024년 <벼랑 위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주거 자본주의 시대다. 이 시대의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다. 어디에, 어떤 집에 사는지가 그 사람의 명함이 된다. 오늘의 계급은 집이 있는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집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좋은 집'에는 더 이상 따뜻함이나 가정적인, 포근함 같은 형용사가 붙지 않는다. 대신, 위치와 조건이 그 기준이 된다. 역세권, 투기지역, 브랜드 아파트,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등 다양한 조건이 갖춰져야 비로소 좋은 집으로 불린다. 여기 한 아파트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다. 바닥에서 바닥으로, 차선에서 차선으로 선택한 삶의 터전이 바로 이곳이다. 그들은 밀리고 밀려 이곳에 왔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살아지니까 나아질 거야. 희망을 읊조리며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잠시 정차되어 있지만 다시 달려갈 내일을 기대하며 그렇게 그들만의 '좋은 집'을 찾아간다. 첫 단추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인 집, 따스한 온기가 흐르 는 '좋은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을 마치고 보니,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감각과 삶을 견뎌 내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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