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는 해에 한 아이가 탄생을 한다.
훗날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항하여 순교자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조선 기독교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던 목사 주기철이다.
대한제국의 탄생과 새로운 광명 시대를 암시하듯 매우 희망차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일제의 침탈은 우리 민족의 희망을 앗아가고
억압과 침탈이라는 굴레만을 씌운다. 이후 일제는 조선 민족에 대한
황국신민화 정책, 경제 정치적 침탈과 아울러 한민족 말살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던
주기철 목사가 장홍련 사건- 평남 노회장 김일선이 신사참배 기념으로 심은
식수를 학생들이 도끼로 파헤친 사건을 계기로 체포 구금되어
온갖 회유와 고문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이 극은 시작된다.
일본의 고등계 형사 낭하의 모진 고문에 정신을 잃게 된 주기철 목사는
유년 시절부터 자신이 자라 왔던 성장기를 회상하게 된다.
즉, 후처의 아들로 태어나 동네애들에게 놀림 당하고,
일본 군사정책에 의해 수탈 당하던 부모님에 대한 아련한 모습들 등...
의젓한 청년으로 자라난 주기철은 남강 이승훈, 춘원 이광수와 같은
민족 교육자들이 설립한 오산 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라를 부국케 할 수
있는 경제학 도로서의 꿈을 키우며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지망한다.
연희전문대 재학시절 구국 학생 청년단에서 친구 이약신과 항일저항운동을
주도 하던 주기철은 비체계적이고 산발적인 학생운동과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안질 발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낙향할 결심을 하게 되고 이로인해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다.
웅천으로 귀향한 뒤 조만식의 강연회에서 그의 배필로 마음에 두었던
안갑수를 만나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져 결혼으로 이어지고 이를 계기로
농촌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애국청년단을 조직, 부부가 함께 하는
조국 광복 운동에 더욱 더 맹렬히 헌신한다.
웅천 마을의 만세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연행되어 처음으로 고문의 두려움을
겪게 된 주기철은 자신의 체포로 충격을 받고 세상을 뜨게 된 그의 부친
주현성의 묘 앞에서 통회자복의 울분을 터뜨린다.
이때 고향으로 내려온 친구 이약신은 실의에 빠진 주기철에게 김익두 목사의
부흥교회를 들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김익두 목사의 설교는
청년 주기철이 민족 운동가에서 철저한 신앙인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를 계기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주기철은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신앙과
열정으로 그의 직책에 헌신하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도 잠시. 얼마 후, 그는 부인 안갑수의 죽음을 맞게 되고
새로 들어온 처 오정모와 가족과의 불화를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 첨예화되는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대항하는 외로운 투쟁을 하는데......
그가 일본 헌병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을 무렵 그의 산정현교회는
주목사의 사퇴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되는 갈등을 겪게 된다.
주목사의 아내요. 교인으로서 겪는 인간적 갈등에 버거워 하던 오정모는
처음으로 자신의 연약한 마음을 주에게 호소한다.
이에 대한 주님의 응답같이 조만식 장로는 주목사가
임시 석방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오정모에게 전한다.
길고 어두웠던 감방생활에도 불구하고 주기철 목사의 신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였고, 교인들에게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이에 공포를 느낀 일본 간부들은 주기철의 목사직을 박탈하고 그의 가족들을
목사관에서 내쫓지만 신사 참배에 대한 그의 불복 정신과 하느님을 향한
그의 순수한 신 앙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일제의 주구 배형사에게 까지
강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주기철이 다시 체포되는 마지막 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정리한다.
그의 처 오정모는 그가 순교하기까지 영원한 종교적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약속한다. 그리하여 오정모는 교인들과 가족들의 비난에도 불구,
낭하의 주구 배형사가 가져온 가석방 인도장에 서인 하기를 거부하며
순교자로서 인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신실한 내조를 한다.
낭하와 일본의 고급 간부 시미즈가와는 오윤선, 조만식, 유계준 등과 같은
영향력 있는 장로들을 잡아들여 주기철의 반대의지를 꺾으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결연하다.
분노한 낭하는 못판을 맨발로 걷게 하는 가장 혹독한 고문을 가하나,
주기철은 신앙의 이름으로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거룩한 순교자의 길을 택한다.
뮤지컬 '황제' (부제:일사각오)는 구한말 왜세의 탄압과 핍박속에서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일사각오로 정도를 걸어왔던 소양 주기철 목사의 참 모습을 "창무극'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간악한 유혹과 회유 그리고 처참한 고문과 이로 인한 고통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 고뇌와 신앙인으로서의 갈등... 이내 종교적 신념과 그리스도의 부름 앞에 순종함으로써 한없는 희열을 느끼고 기쁨과 환희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역정과 거룩한 신심이 이 극의 중심을 이룬다. 실천하는 목회자여, 깨어있는 주님의 종 주기철 목사! 기쁨과 환희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진정한 이 땅의 황제, 소양 주기철 목사! 훗날, 이 땅의 독립과 광복의 밑거름이 됨은 물론 참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로 그 빛을 발하게 되니 이는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크나 큰 감동과 도전의 교훈으로 남는다.
주기철 [朱基徹]목사 (1897-1944) 호 소양(蘇羊). 아명 기복(基福). 경남 창원(昌原) 출생이다. 1916년 평북 정주의 오산(五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연희전문(延禧專門)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퇴하였다. 그 후 웅천(熊川)에서 남학회(南學會)를 조직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으며, 3·1운동에 참가한 후 1926년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산 초량교회(草梁敎會) 목사, 마산 문창(文昌) 교회목사를 거쳐 1936년 평양 산정현(山亭峴) 교회목사가 된 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38년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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