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을씨년스러운 공사장 벤치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
그들은 상처를 간직한 외톨이들이다. 딱히 직업도 없고 또 당장 어떤 일을
막 해보고 싶지도 않은 그런, 약간은 무료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또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외톨이요,
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은, 그래서 더욱 맘을 닫고 사는,
일종의 활동형(?) 외톨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통을 원한다.
누군가와 정말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고, 남들처럼 아름답고 신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하고 볼품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막막하고 그들 앞에 펼쳐진 세상은 황량하다.
그런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끌린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는데..
서서히 서로의 닮은 외로움들을 확인하게 되고, 통하게 되고, 연애하게 된다.
하지만 소통의 기쁨도 잠시, 그들은 고민이 생긴다.
앞날, 미래, 그들에겐 안개 속과도 같은 그 현실 앞에 두 사람은 고민한다.
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 연애의 종착점은?
그들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 다다르는데….
가끔 인생이 닭고기 가슴살마냥 퍽퍽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어느 순간 그냥 완료형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여기, 숱한 이십대의 파란을 거치면서 그럭저럭 숨은 쉬며 살아가는 두 청춘이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월급을 받고 싶은 스물아홉의 여자와 각종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져 온 식기를 싸들고 공사장으로 소풍을 가는 서른의 남자. 그러나 그런 두 연인의 모습이 마냥 처량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몇 걸음 떨어져서 그들의 데이트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기억의 매듭은 풀려 버린다. 그 언젠가 사랑을 얘기할 때, 나도 저런 대사를 읊었더랬지 누군가와 함께 둘만의 무대를 채워가며 그렇게 설레어 했었지. 하며 현실의 고통 따위는 잠시 잊은 채 그저 달콤한 연애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 이시원은 <데이트>를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욕망을 찌릿할 정도로 술직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글 - 이시원
"작품을 보신 분들이 작가의 로망이 너무 투영된 거 아니냔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이게 아주 야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에둘러서 하고 싶은 얘기들을 많이 해서, 은근 엽기 커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쓰면서도 나이도 적지 않은데 사랑들이 엽기적이라고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거 신경쓰다보면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할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제가 머리 짜내서 만들어낸 얘기들이지만! 이젠 그냥 제 얘기라고 생각하셔도 상관없는 것 같아요. 여자 분들이 많이 공감하시긴 하는데, 특별히 여자들의 입장을 얘기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저 늙기 전에 재미있는 연애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청춘들을 그린 거죠. 제 삶이 한때 그럴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잘 사는 삶은 아니지만,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상당히 피폐하게 살았다고 할까요? 마음으로는 정알 열심히 살고 싶죠. 근대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게, 마냥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게 아니잖아요. 누구 못지않게 갈등하고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래요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들도 많고요. 이런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그랬거든요. 며칠을 방에서 뒹굴면서 지내다가도, 연애를 하면 밖에 나가는 거예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야, 내가 사랑이 아니면 밖에도 잘 안 나가는구나. 이런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 돈도 벌고 싶고, 애인한테 뭔가 잘해주고 싶고, 그 사랑 자체가 세상을 향한 소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마음으로 섰죠. 너네 그렇게 힘들면 사랑을 해서 그걸 통해서 사회생활도 하고 힘도 좀 내고 그래라. 하구요“
문예창작 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이시원은 졸업 후 같이 스터디를 하던 친구들의 권유로 희곡을 쓰개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소설로 썼던 <녹차정원>을 희곡으로 각색한 것이 2005 제7회 옥랑 희곡상에 당선되면서 이제 그의 두 번째 희곡 <데이트>가 무대에 올랐고, 곧이어 <녹차정원>도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운이 좋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연습기간 내내 배우들과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새내기 작가에게 이 봄이 따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보상이 아닐까. 장마철을 좋아해 주로 그때 글을 쓴다는 그녀는. 여름이 오기 전에 얼른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요즘도 극장 한 구석에서 골똘히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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