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clint 2025. 1. 30. 06:46

 

 

 

정과장은 마약이 든 트렁크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이준상의 철저한 하수인 노릇을 하고,

옥자는 식모로서 지조 관념이 없이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맡기며 지시받는 일에만

익숙해 있다. 자신들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줄 알았던 변이순과 이준상도 국정이

등장함으로써 서서히 그 비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국정은 자신의 옛 동거녀를 만나러 찾아 왔던 것인데 뜻밖에도 트렁크에 뭔가

비밀이 담겨있음을 직감하고 큰소리를 친다.

트렁크 안에 든 마약으로 인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준상은 국정의 방문에

지레 겁을 먹고 주인 행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준상의 아내 변이순도 과거에 정신분열증을 앓은 경력이 있는 빠걸 출신으로

국정의 동거녀였음이 밝혀진다.

이순은 자기 집에서의 삶보다는 병원에서의 생활이 더 낫다는 푸념을 늘어 놓기까지

한다.결국 트렁크의 비밀로 인해 모랄이 부재한 인물들의 모습이 노출되는데,

준상은 자신의 이름을 아내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순이 마약을 먹는 걸

도와 주고, 국정은 이순의 약점과 트렁크의 비밀을 빌미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가운데서 이순의 분열증은 점점 더 그 도를 더해 간다.

그리하여 국정은 정신 병원에 신고를 해놓고 사이렌을 울리며 조수가 들어서자

피묻은 손으로 이순의 목을 조른 후 그녀가 자살했다하여 돌려 보낸다.

조수 역시 자기들 일감을 덜어 주었다며 떠나간다.

 

 

 

<유다여, 닭이...>은 광기의 인간과 정상의 인간 사이에 놓인 부조리함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도 정상적이지 못하다. 정신분열증 환자이거나

도덕적으로 부정하거나 인간다움을 상실하고 기계적인 인간들이다.

등장인물들은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이와 같이 이 작품에서는 한결같이 부조리한 인물들만 등장한다. 이를 통해 오태석은 현대인의 감추어진 불안 심리와 위기의식을 노출시킨다. 인물들이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고 개성이 상실되었으며 무의미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은 그들의 부조리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기계화되어 있거나(정과장), 도덕성을 상실하였고(옥자),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자(준상, 국정) 들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 본래의 심성을 잃고 정체성도 없는 소외된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이순을 중심으로 부부이기도 하고(준상과 이순), 동거인(국정과 이순)이기도 한 애매모호한 것이다. 국정은 자신의 닭을 '유다의 닭'으로 착각하고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닭 이야기를 엉뚱하게 자신의 삶에 갖다 붙인다. <유다의 닭>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부조리와 소외와 불안과 위기의식을 보여 준다. 그러한 부조리한 관계를 통해서 현대인의 정신 상황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교의 변칙 - 오태석의 글
다방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서더니 두리번거린다.
 "왔군요. 가서 전화 걸고 계세요." 
 "전화? 
 "아무나 한 5분만, 이쪽은 보지 마시고"
 "뭣하면 내가 만날까?" 
 "아니오. 제 일인 걸요." 
하고 여자는 남자쪽을 보면서 턱으로는 전화통을 가리킨다. 

보지 말라는 쪽은 보지 않고 연한 벽돌색 통속에 네 번 동전을 물리는 동안 

다이얼을 23번째 돌리는데 나직한 여자의 목소리가 목에 감긴다.
 "됐어요. 가요." 하고 여자가 앞서나가고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여자를 뺏기고 앉아 있을 남자의 차값을 물어주고 나온다. 그리고 나흘 뒤에 30분 늦게 온 여자는 내 애인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며, 아직 정리가 되어있지 않을 것 같아 뵈는 애인과 나 사이의 일을 분명히 해두었으니, 앞으로 애인은 더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고맙군. 그래서 될 일이 아닌 줄 알지 몇 가지 확인을 다시해야 되겠어서... 그 사람 다시 보지 말기로 합시다."
 "미안해요." 

그 순간부터 우리가 안도의 숨을 뱃고동처럼 내쉬었을 때부터 우리는 절망하고 있었다.
 내가 등을 돌리고 23번 다이알을 돌리는 동안. 여자가 만난 남자는 없었고, 내게도 애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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