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동연 '환상동화'

clint 2025. 1. 29. 07:00

 

프롤로그
"환상동화"는 세 광대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전쟁, 사랑, 예술” 광대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전쟁광대는 인간의 파괴 본능을 자극하는 전쟁을, 
사랑광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애절한 사랑을, 
예술광대는 영원불멸의 가치를 창조하는 예술!
공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자... 마음이 급해진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전쟁, 사랑, 예술. 이 모든 것이 들어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음악가 한스.
전쟁! 전쟁 때문에 피아노를 치던 한스의 두 손엔 총이 들려진다.
치열한 전쟁터로 내몰려 격전지에서 한스는 부상 당해 그만 정신을 잃는다.
고립된 곳에서 헤매던 한스는 설상가상 적군과 맞닥뜨린다.
달빛조차 숨을 죽인 정적의 순간. 적군이 말문을 엽니다.
"난 당신을 쏘고 싶진 않아. 그러면 더 외로워 질 테니까."
잠시 후 두 사내는 총을 거두고 그들만의 휴전한다. 
그리고 둘은 전쟁터가 아닌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을 꿈꾼다.
"여기가 어느 한적한 도시의 작은 카페라고 상상해보는 건 어때?"
그들은 상상 속 카페 안으로 들어가 시를 읊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적군의 동생 마리가 등장합니다. 마리는 멋진 춤을 춘다.

 

 


다시 총소리가 들리자 환상은 전쟁 앞에 무참히 깨어진다.
폭격으로 인해 방공호로 피신한 마리. 계속되는 전쟁. 
마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새하얀 어둠을 본 뒤 앞을 못보게 되고
한스는 폭음과 함께 지금껏 듣지 못한 거대한 소리를 들었고, 못 듣게 된다.
공습으로 폐허가 된 카페, 전쟁이 주춤하자 다시 카페는 문을 연다.
하지만 마리가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 것.
그리고 한스는 적군의 편지를 들고 마리를 찾아 카페에 오게 된다. 
더 이상 음악도 춤도 없는 카페. 어느 날 배달된 마리 오빠의 사망 통지서. 
한스는 사망통지서 대신 마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짜 편지를 읽어준다.
이렇게 만나게 된 한스와 마리. 친근함에서 애틋함으로 절실함으로 변하는
사랑의 마법이 시작된 것이다. 한스와 마리는 매일 카페에서 만나 대화하고 
마리는 한스의 손에 글씨를 쓰며, 한스는 마리의 입 모양을 보고, 대화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전쟁 중이고 음악도 마리는 춤을 출 수 없었다. 
어느 날 마리는 한스에게 동화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환상동화"

 



「아름다운 왕국에 춤을 추는 아름다운 공주 "아르미" 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공주는 무시무시한 마법사 자글러에게 납치됩니다.
왕은 용사들을 보내 보지만 모두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비온이란 청년이 공주를 구하기 위해 피리 하나 들고 길을 떠납니다. 
험한 길을 헤치고 뜨거운 불을 내뿜는 용도 피리소리로 춤추게 만드는 다비온.
자글러는 그런 다비온에게 무시무시한 마법을 겁니다.
하지만 귀머거리인 다비온은 그 주문을 듣지 못해 마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드디어 공주를 구해낸 다비온. 하지만 마법에 걸려 춤출 수 없는 아르미 공주.
다비온은 공주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피리를 붑니다.
그러자 마법이 풀리고 다시 춤을 추는 공주.
왕국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 동화에 감동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스. 
그 연주를 듣는 마리 역시 음악에 맞춰 아르미 공주 같이 춤을 춘다.
카페는 다시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 했다. 
다시 공습 사이렌이 울린다. 한스는 이제 전쟁터로 가야다. 
하지만 오빠를 기다리는 마리는 카페를 떠나지 않는다. 
둘은 슬픈 이별을 맞이 합니다. 떠나기 전 한스는 마리에게 오빠 편지가 왔다며 
읽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스의 손에는 편지 대신 그의 악보가 들려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한다. "널 꼭 지킬게"
공습은 계속되지만 마리는 텅빈 카페에 홀로 남아 춤을 춘다.
떠난 한스를 그리며,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생각하면서.
그때 어디선가 흘러오는 피아노 소리. 한스가 다시 카페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곧 이 음악이 완성되면 마법이 풀릴 테니까. 그럼 전쟁도 끝나니까"
한스의 음악과 마리의 춤이 공간을 채우고 카페는 열정과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누구는 시를 읊고 누구는 노래부르고 연극도 하고 북적였다.
밖은 여전히 전쟁 중이고 그렇게 그들의 환상도 현실도 계속 되었다.

 


에필로그
자, 이렇게 전쟁, 예술, 사랑 광대가 들려주는 한스와 마리의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스와, 춤추고 있을 마리에게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환상동화"의 세상에서 살고 있노라고 말이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일상. 전쟁의 소음이 우리의 귀를 멀게 하고, 
전쟁의 잔혹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더라도 그럼에도 우린 
꿈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의 글 - 김동연

2013년의 환상동화는 2003년의 스물아홉 초짜 연출에겐 환상 같은 일입니다

500만 원 남짓의 돈으로 올린 단 3일간의 초연. 여러 지원금 심사에 떨어지면서 겪은 좌절 그리고 대학로에서 정식으로 공연되던 감격. 그리고 관객과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 네 그렇게 십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환상동화를 쓰고 연출한 저의 환상은 현실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전쟁 중이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시 준비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지겨운 거짓말을 준비하고 누군가 재미있게 들어줬으면 하는 불안한 소망을 품습니다. 드디어 준비한 거짓말들이 무대에서 환상을 만드는 순간 사람들이 그 세상을 함께 즐기고 행복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라도 세상이 달라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긴 세월 동안 '환상동화'를 함께 했고 또한 이 순간을 함께 하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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