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천정완 '수안보'

clint 2025. 1. 31. 06:09

 

 

손님이라고 해봐야 늙은 아저씨 몇 명이 전부인 수안보 라이브클럽에서

반주를 하는 김철기는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다.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른 채로 지내다 문득 거울을 보니

어느 덧 중년을 넘기고 늙은 자신이 있다. 유일한 재주인 악기를 이용해

겨우 하루를 벌어 사는 김철기. 수안보 라이브 클럽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김철기에게 새로운 가수 강미주가 관심을 가지고 강미주와 가까워질수록

김철기는 자신이 초라하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강미주에게서 첫사랑의 기억을

발견하고 그녀의 웃음에서 위안을 얻게 된 김철기.

제2의 청춘을 맞이하는 김철기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이는 행복일까? 아니면 외로움을 감추는 것일까?

나와 당신 그리고 어른과 젊은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과 이상의 고민을

김철기를 통해 함께 바라본다.

 

 

 

충북 청주에 수안보라는 곳이 있다. 수안보는 7‧80년대 젊은 신혼부부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혼여행지 또는 관광부흥에 힘입어 가족 또는 친구들과 근교로 쉽게 떠날 수 있는 온천 여행지로 그 시절 한 해 방문객 20만이 찾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는 수안보에 대한 인식도 찾는 발걸음도 줄어들어 한적한 시골의 온천마을이 됐다. 연극 ‘수안보’는 서울 근교에 있는 한 라이브 클럽 '수안보'에서 틀어진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상향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손님이라고 해봐야 늙은 아저씨 몇 명이 전부인 수안보 라이브클럽에는 반주를 하며 의미 없는 삶을 보내는 ‘김철기’와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클럽 웨이터 ‘박영규’, 클럽의 터줏대감 ‘김영주’와 돈에 눈이 먼 ‘조 실장’ 그리고 새로 온 가수 ‘강미주’가 있다. 그들은 모두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사랑’에 관해 말한다.

 

 

 

 

이들에게 인생은 쓰디쓴 술과 같다.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주저 없이 누르겠다 말할 만큼 삶이 고달프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다. 인생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랑도 너무나 쓰다. 환갑이 넘은 김철기와 30대 초반의 강미주가 사랑을 한다. 조실장도, 김영주도, 박영규도 서로가 엇갈린 사랑을 한다. 서로 닮은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사랑과 달리 이들의 사랑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아프다. 누군가에게 평범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이 되기도 하며 또한 누군가의 특별함이 누군가의 평범함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평범한 것들을 당연스레 여기고 특별함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범한 것들은 분명 처음부터 일상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며, 특별한 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지기 마련이다. 늘 새로운 것만을, 남보다 좋은 것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연극 ‘수안보’는 덤덤하게 그러나 무겁지 않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래도 보아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일본의 어느 노승이 지었다는 이 시처럼 수안보의 사람들의 가지 속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리셋버튼을 누르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여전히 그들의 가슴에는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꽃을 피우기 위해 실제 수안보처럼 재도약을 꿈꾸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시대의 주역이었지만, 현대에서는 소외되어가는 계층인 노년. 그들의 가슴에도 여전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묵언 적 제약을 과거의 부흥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화려한 그 시절을 되돌리려는 한 지역에 비하여 표현해내는 로맨스를 바라보며 우리네 노년들이 안고 있는 외로움의 주최가 바로 우리였다는 문제점을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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