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 왔을 때 항상 찻잔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목요일 저녁에는 늘 고기 요리를
먹어야하며 단 한시간의 오차도 없이 살아가는 남편은 일정한 삶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성장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했던 아이들 또한
자신들의 삶에만 관심이 있을 뿐 엄마의 존재를 인격적인 하나의 개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 모두 냉장고나 세탁기가 늘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주부도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만 인정할 뿐 주부가 무엇을 꿈꾸며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셜리는 그래서 늘 벽앞에 앉아 벽이나 보고 얘기를 나누어야 한다.
때로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벽 넘어 낯선 세계는 두려움의 공간이요, 나하고는 상관없는 남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셜리에게 어느 날 이혼한 친구 제인이 함께 그리스의 해변으로 여행을 떠나자며
비행기 티켓을 보내 온다.
셜리에게는 겨우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스 해변에서의 2주일!
그러나 남편의 식사는 어떻게 하고 지식들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리고 다 허물어진 이몸에 수영복이라니_ 또 남편에겐 뭐라고 말을 하지?
승낙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인데. 감히 떠날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셜리이지만 그의 마음에서는 이미 일상에 대한 배반이 고개 들기 시작한다.
술집 웨이터인 코스타스는 테이블과 의자를 바닷가로 옮겨 셜리의 오랜
꿈을 이루게 해준다. ‘여자에게 얘기하는 법’을 아는 친절한 그리스 남자,
코스타스와 사랑에 빠진 셜리. ‘만일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날 그리워할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근데 왜 다시 돌아가 더 이상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자가 돼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코스타스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깨닫는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지 않았다는 것을. 사용하지도 않을 감정과 꿈과 희망을 지닌 채 살아가는 건
신에 대한 범죄라는 것을. 스스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 셜리는 결심한다.
“난 돌아가지 않아. 돌아가지 않을거야.” 그리스에 남아 웨이트레스로 일하며
살겠다는 셜리에게 어리석은 짓 집어치우고 당장 돌아오라고 전화 속에서
소리 지르던 남편이 어느 날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셜리는 코스타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위해 바닷가에 테이블을 내놔 달라고
부탁한다. 바닷가 테이블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셜리.
남편에게도 휴가가 필요하고 피부에 태양을 느끼고 영원만큼 깊은 바다를
오래 바라보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일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하면서.
“안녕하세요? 난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또 애들의 엄마였구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셜리 발렌타인이 되었답니다.
함께 와인 한잔 하시겠어요?”
직장에 나가는 남편과 이제는 다 자라 자신의 길을 가는 1남 1녀를 둔 평범한 주부가 소극적이고 무능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모노드라마다.
셜리· 발렌타인을 통해 러셀은 삶의 무의성에 도전하는 한 인간의 내적 다이나미즘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셜리 발렌타인은 일상적 삶의 권태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 중년여성의 전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각성과 자아실현의 테마를 담고 있다. 그러한 각성과 자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성을 시사하기로 한다. 꿈과 희망에 가득차야 할 학창시절에 대한 좌절되고 굴절된 기억들은 비인간화 되고 기계화된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성장한 자식들에게 서 경험하는 배신감과 고립감, 경멸감과 허무감만을 남겨놓은 남편 과의 무미건조하고 굴욕적인 결혼생활 등은 페미니즘적 구도속에서 파악되는 한 여성의 방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지어 가족 간에서까지 겪어야 하는 소외와 단절의 부조리적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러셀은 대답없는 '벽'을 향해 끊임없이 주절대는 설리의 독백을 통해 근원적인 철학적 명제를 계속적으로 상기시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존재하는가?" 설리의 도전은 결국 침체되고, 무기력화되고 일상화된 자아에 대한 도전이며, 부조리한 삶에 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현대적 인간성을 대표한다. 그러나 셜리의 도전은 필사적이거나 냉소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 내부의 지극히 인간적인 애정과 관용속에서 또다른 낙관주의를 잉태한다. 그녀의 자아발견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남편의 삶에 대한 따뜻한 이해에 도달한다. 타인에 대한 포용까지도 수반하는 차원 높은 자아에 대한 발견은 셜리의 인간적 성숙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상황의 전개이다. 코스타스라는 남성과의 만남은 위축된 셜리의 삶에 새로운 독립성과 자신감을 부여한다. 코스타스라는 존재는 설리의 행위를 비도덕적이라고 치부하는 단순한 해석을 거부한다. 그는 셜리가 꿈이 아닌 현실속에 굳건히 서게하는 한 계기를 제공하는 상황의 이미지일 뿐이다. 타인을 거부함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존재하는 필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설리 발렌타인!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찾은 유쾌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녀는 유머와 자신감 속에서 자신 뿐 아니라 남까지 끌어안는 멋진 당신의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설리는 남편을 기다린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므로......
"안녕하세요. 난 한때 어머니였어요.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셜리 발렌타인이 됐답니다. 함께 한잔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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