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재현 '대한'

clint 2015. 11. 10. 22:00

 

 

 

 

 

- 사도세자 - 정조의 3대에 이르는 정통 사극으로 역사적 고증에 철저했던 작가의 노력이 보인다.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죽은 세자, 그리고 그렇게 죽임을 멸한 영조, 10살의 어린 나이에 그것을 지켜보았던 세손 그리고 조용히 말이 없던 세저비 혜경궁 홍씨... 혜경궁의 궁중일기인 한중록에서 암시를 받아 썼다는 이 작품은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성격차탄의 원인규명을 통해 추악한 정치사의 단면을 파헤친 수작의 역사 대하극이다


영조가 세자를 죽일수 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중 당시 노론의 득세로 인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세자의 등극을 여러 음해와 공작으로 방해 했다는 것과 영조 자신의 최무술이의 소생으로 임금은 무취라고 하나 태생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고 또한 영조는 조선왕조 임금들 중 가장 집권기가 길었던 임금으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집권에 대한 친위반정(친위쿠테타)를 걱정할 수 밖에 없었으며 사도세자가 반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강박관념과 그리고 세자 수업에 실증을 느낀 세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여러 요인으로 영조의 심기를 틀리게 한 것인데 작가는 이 모두를 극중에 나타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의 죽음을 목격한 정조가 성인이 되어 모친 혜경궁에게 사실을 말해달라고 하나 혜경국은 금언령을 내린 영조의 뜩을 받아들여야한다고 거절한다. 정조는 사실을 집요하게 추적끝에 노론늬 대신들에게 사도세자의 광증과 문란한 행위가 근원이었음을 듣고 아버지에 대한 효보다는 부끄러운 갱각이 앞선다. 그러나 그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홍국영의 끈질긴 간언과 화완 옹주와 문숙의의 담합장면을 목격하고 점차 생각이 비뀐다. 혜경궁을 설득하여 마침내 자식들에 대한 영조의 차별이 사고세자의 광증의 원인이었음을 알게되고 그 이면에 노론의 조직적인 음해와 공작이 있음을 알게된다.
한편 대리청정을 시작하고 어린 손자가 자리를 잡기시작하자 영조는 손자인 정조에게 노론의 힘을 입어 등극했던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다. 당시 여섯 살인 영조가 자신이 보위에 오르면 노론을 제거하겠다고 발언한데 대해 노론은 과앙충성하였고 그런 노론에 신세를 진 자신은 노론의 의견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그리고 사도세자에 대한 아비로서의 화해를 뜻을 비추고 이후 정조가 정파에 휘두르지 않게 조처한다. 영조가 승하하고 보위에 오른 정조는 홍국영, 김양택 등의 재차 간언으로 임호화변의 주역들에게 사약을 내린다. 주번의 한을 품게 되었음을 알리는 혜경궁의 독백으로 막은 내린다.

 

 

 

 

작가의 글 - 이재현
나에게 적지 않은 史劇이 있으나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라면 서슴없이 '大恨'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집필 기간도 길었고 철저한 고증도 거쳤다. 3代에 걸친 이 방대한 이야기는 비로소 나를 사극에 흠뻑 심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76년 민중극장에서의 초연과 77년 수도 사대에서의 공연은 내가 직접 연출까지 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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