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깊은 시간에 국민보호위원회 직원 2명이 김상호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한다. 그 다음날 저녁 늦은 시각, 상호의 사무실, 상호의 죽마고우인 조 강사, 시의원을 출마하려는 중국 음식점 경영자 최 대포, 그의 친구이며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정 사장 등이 모처럼 모여 포커를 치고 있다. 집권당의 비리를 글로 쓴 일로 집권당 대통령 후보 측근들에게 이틀째 불려갔던 김상호가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들어선다. 이 자리에 상호가 친구 조진영에게, 평소에 자주 얘기했던 연변에 사는 숙자라는 여자가 그날 오후에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여당 대권후보 측근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호출당하여 협조를 강요당하는 등의 일로 숙자를 마중 나가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한편, 상호를 10년 간이나 사모해온 미스 박 스튜어디스의 당숙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므로 상호는 결국 그 조카 사위가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따위의 뜬소문이 포커꾼들 입을 통해 전달되나, 상호는 이를 부인한다.
국민보호위원회 사무실. 과장과 과원이 슬라이드 사진을 보면서, 김상호의 신상을 추적하고 있다. 과장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마지 못해 그 일을 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심한 갈등에 빠지고, 급기야 그 불만이 폭발되고 만다. 이때 과원이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귀뜸해 주자 과장은 놀라는 한편, 내친김에 불평불만을 마저 쏟아놓는다.
시각은 새벽. 밤새 업무에 시달린 과장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자 과원이 김상호 사무실에 설치된 도청장치로부터 입수된 내용을 검토할 것을 건의한다. 이에 과장이 피곤하니 내일 듣자고 하자 과원은 국장께서 도청결과를 그날 아침 조회때까지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과장은 할 수 없이 도청된 내용을 점검하는데 ........
앞장면에 이어지는 시각. 새벽녘, 포커꾼들이 돌아간 사무실에서 상호가 지친 몸으로 해장국을 먹고, 그 곁에 해장국 집 딸이며 집권당 대통령 후보 조카딸인 미스 박이 곰 인형에게 빗대어 상호에게 노골적으로 구애를 한다. 상호가 관심을 주지 않자 모욕을 느낀 미스 박은 곰을 패대기치며 나가버린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 박아지양은 숙자라는 여자가 누구냐고 다그친다. 상호가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자 아지양은 슬픔을 참지 못한다. 그녀를 달랜 후 상호는 식은 해장국을 마저 먹으려 하는데 아지양이 뎁혀다 드리겠다며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해장국이 엎질러져 상호의 옷이 젖고 만다. 아지양이 상호의 상의를 빨려고 세면장으로 간사이 다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미처 바지를 입지 못한 채 어디선가 쫓겨온 방범이 들이닥친다. 체통을 찾을 구실을 찾던 방범은 여자의 기척이 난 것을 꼬투리 삼아 상호에게 세면장 쪽을 가리키며 불온문서 찍어내는 곳이 아니냐고 몰아붙이다가 느닷없이 그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에 화가 치밀고 어이가 없는 상호가 방범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내자 국민보호위원회와 끈이 닿고 집권당 대통령 후보와도 동향인 방범은 되레 “전화 한통 씁시다"하며 파출소에 전화하여 한 건 했다고 큰소리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나온 아지양을 보자 당황하기 쩔쩔매며 사죄하고 도망치듯 나간다. 이어서 상호와 아지 양이 옷을 다시 바꿔 입는 사이에 여직원 미스리가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사장인 상호를 흠모해오던 미스리로서는 크게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등장한 안 감독은 한바탕 자기감정에 도취해 떠들어 대던 끝에 미스 박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상호가 세면장에 간 사이 미스리에게 접근하여 구애한다.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친구 조강사인줄 착각한 그는 날쌔게 미스리 책상 뒤로 숨어 물총을 겨누는데 정작 나타낸 것은 국민보호위원회 직원 2명이다.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영장이 없음을 확인한 상호가 동행을 거부하자 공포를 쏘면서 상호를 강제 연행한다. 앞 장면에 이어지는 시각, 아침, 강의하러 가는 길에 상호의 사무실에 들러 상호가 강제 연행된 사실을 알게 된 조강사는 어둠속에서 안감독을 심하게 질책을 한다.
상호의 사무실 도청 내용을 듣고 있는 과장과 과원은, 아지양이 화나서 호흡이 거친 것도 모르고 이들은 상호와 아지양이 성관계를 하고 있는 현장으로 착각, 상호를 구속해야 할지 돌려보내야 할지 혼란속에 빠진다.
이어지는 시각. 상호의 텅 빈 사무실에 최 대포가 등장한다. 그는 시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친구 정사장과 만나기로 한 것인데 상호와 조강사에게 선거유세 원고나 부탁할 양으로 상호 사무실을 약속장소로 택한 것이다. 정사장이 출연하고 전화벨이 울리자 전화 공포증이 생긴 최대포가 정사장을 몰아붙여 전화 받으라고 실랑이를 벌이는데 이번에는 조강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정 사장은 비로소 상호가 어디론 가 붙들려 갔음을 안다.
어느 카페 한 모퉁이. 단신으로 연변에서 상호를 찾아 서울에 온 숙자는 상호가 어디론가 불려갔다는 것, 그를 빼오기 위해 박아지양이 이리저리 애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지양이 상호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어 서울행을 결사 반대하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고뇌속에 빠져있다. 그 정경을 한 켠에서 지켜보던 방범이 다가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숙자는 그가 높은 지위의 인간인 줄 착각한다. 방범은 그녀가 이북 어디쯤에서 온 여자임을 간파하고 상호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더 캐물으려는 찰나에 상호 때문에 전화를 걸러갔던 아지양이 달려오다 방범을 보고 가서 볼일 보라며 쫓아버린다. 단둘이 된 이들은 서로 상호에 대한 자신들의 애정을 정도로 내세우며 긴장하다가 미스 박이 숙자를 만류하여 자리에 앉히고 상호가 끌려간 곳이 어딘지 자신도 모른다고 설명해주자 비로소 사태를 깨닫게 된 숙자는 갖은 애를 쓴 아지양을 위로한다. 아지양이 상호문제로 대권후보를 만나러 간 뒤 조강사는 숙자에게 상호 모친이 숙자를 보러 왔노라고 전해준다.
국민보호위원회 취조실. 직원이 아침에 다른 직원이 상호를 강제구인해올 때 있었던 무례를 정중히 사과하며 취조를 시작한다. 그러나 잘못이 없는 상호로서는 상대가 이미 정해진 시간으로 돌려 가려하자 반발한다. 직원은 상호를 재야나 운동권 출신으로 지레 짐작하고 배후가 누구인지, 어느 계열인지 등을 캐물으나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한 상호가 이를 부인하자 상호를 걷어찬다. 취조가 감정적인 차원으로 흐르자 과장이 스피커를 통해 직원에게 주의를 환기시킨다. 잠시 후 과원이 다시 취조를 하다가 흥분하자 결국 과장이 등장하여 대뜸 숙자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상호가 도리어 댁이 그녀를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자 노련한 과장도 순간 허를 찔리어 이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노출되기에 이른다. 과장 역시 결국 자기 감정에 휘말려 상호에게 손찌검하게 되자 스피커를 통해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과장에게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보이지 않는 조직의 형태를 드러낸다.
상호 사무실. 낮. 미스 리, 안 감독은 상호 문제가 그의 모친께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조강사가 숫자를 앞세우고 들어와 상호 모친께 소개시킨다. 이에 상호 모친은 내심 숫자를 며느리 간으로 흡족하게 여기는 찰라, 방범이 나타나 상호가 시국사범이라는 둥 떠드니....
국민보호 위원회 취조실. 과원은 어머님이 퇴원하시는 날이라 과장에게 그 사실을 사뢰고 과장은 돈을 주며 위로한다. 이를 지켜보던 상호는 흐뭇한 마음이 되어 어릴 때 추억을 더듬고, 서로 마음이 통한 상호와 과장은 가난하여 밀가루 음식만 먹던 시절 애기를 주고받는다. 과 장은 상호에게 미스 박과 결혼할 사이라고 얘기해야 당장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나, 상호는 그런 사이가 아니므로 그런 식으로 풀려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상호 사무실. 오후. 자식 문제로 충격을 받은 상호 모친을, 조 강사, 안 감독, 숙자, 미스리가 간호한다. 상호 모친은 자식이 파렴치범 짓이 아닌 바른 말하다가 붙들려간 사실을 알고 기뻐한다. 이어서 상호가 시골로 내려가려 하는 문제로 조강사와 얘기하는 동안 미스 박의 도움으로 풀려난 상호가 들어온다. 모친은 시골로 내려가려는 상호의 의지를 확인하고 결혼문제로 고민하자, 상호는 숙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데, 모친은 미스 박이 내일 비행기표를 끊어 줬다며 답답해 한다.
가로등 겸 벤치. 상호와 숙자가 오랜만에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갖는다. 이들이 미묘한 감정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생애 첫 포옹을 하고 있을 때, 과장과 과원이 다가온다. 상호는 숙자에게 위안의 시선을 던지고 다시 끌려갈 생각을 한다.
이원기 작가의 글 "15년만의 외출 "
극작이라고는 체계적으로 배운 바도 없고, 그저 자신이 좋아서 택한 것이 연극이다 보니 의무감 비슷한 중압감 속에서 단막극 한편 장막극 두 편을 써본 것이 전부인 필자로서는 실로 15년만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여러 사람들 앞에 불쑥 튀어나온 기분이다. 세월이 지난 옷을 꺼내입고 제 딴에는 마음껏 차리고 나섰으나 이미 세월이 흘러 유행이 수도없이 뒤바뀌어 촌스럽기 짝이 없는 차림새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 외출에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참담하 고 부끄러운 심정에 처한 사람 꼴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치면서도 몇가지만은 꼭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연극에서의 재미, 그 출발은 극작가의 재능과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배우들에게조차 아무런 매력과 재미를 부여해 줄 수 없는 작품이라면 그 길고 힘든 작업과정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면을 구축하는 길 이점에서 도저히 만족할 수는 없으나 한두 가지만이라도 찾아낸 것으로 자위하는 수 밖엔 없는 형편이다. 세째로 주제를 드러내는 일. 필자가 그동안 보아온 창작극은 재미라는 면과 이점에서 특히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는 생각이다. 주제를 부각시키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말은 멋있는데, 너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급기야 도대체 뭘 얘기하려는 지를 모르게 만드는 작품이 없지 않을 것이다. 관객은 철학강의나 인생설교를 들으러 극장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런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부터가 심판대에 올라설 순간이 왔다. 네째 경험이 많은 배우들을 믿는다. 필자는 이점만으로도 이번이 작업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다. 따라서 "방범비 내셨나요?"는 참여자 모두가 쓴 작품이다. 특히 3월 어느 날 전 출연자와 스텝이 민경이네 집에 가서 이튿날 아침 9시까지 꼬박 밤을 밝히며 작품을 뜯어고친 일은 먼 훗날까지 흐뭇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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