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병균 '최초의 만찬'

clint 2023. 2. 28. 11:10

 

1919년에 태어난 학생들이 만든 조직 '19' 1939년 태평양전쟁에 끌려가는 학도병들을 탈출시키는 거사를 준비하였지만 실패한다. 이 조직원들은 그 사건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가 해방이후 1949년 인천의 한 여관에서 처음으로 다시 만난다.

"조선의 독립이 오는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 웃음꽃 피워가며 다 함께 맘 편히 밥 한끼 나누세."

<최초의 만찬> 중에 나오는 대사이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할 때 동지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이 말을 기억하고 있던 귀옥은 19회 동지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초대장을 받은 동지들은 함께 먹을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서 모이는데, 술과 메밀 전병, 우유 등을 들고 온다. 그런데 최초의 만찬을 하게 된 건 이런 훈훈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석별의 정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19회 동지들은 배신자를 찾아내고, 석별의 정을 나누며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게 될까? 마피아 게임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추리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 작품은 해방 전후, 인천이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건과 연극적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었다. ,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진 혼란한 시기 한국사회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였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씨앗이 뿌려진 혼돈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자 셋, 남자 다섯 명이다. 귀옥은 최초의 만찬을 기획한 인물로 남동생이 있으며, 황국 신민교육에 항의하여 동맹휴학을 조직한 조선의 잔 다르크 같은 여성이었다. 진영은 내부자의 배신만 없다면 거사는 성공한다고 믿었던 모임의 중심인물이었다. 월순은 29년생으로 다른 이들보다 10살 어린 여성인데, 1949년 현재 20세로 제사공장에 다니고 있다. 형두는 부유한 아버지를 따라 교회 목회자가 된 인물이며, 덕출은 기자이다. 춘재는 빈농출신으로 헌책방 주인을 하고 있고, 신규는 연극배우인데, 이 두 인물은 보도연맹으로 인해 남한에서는 살 수 없어 월북을 준비하고 있다. 꺽출은 성격이 호탕하여 이 자리에 술을 가지고 왔고, 인천 지역에 사는 여러 지방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섞어서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

<최초의 만찬>에서 다루는 가장 큰 이슈는 1939년 일제강점기 때 계획했던 거사를 밀고한 배신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배신자를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인데, 의외의 반전도 있어서 희곡을 읽는 재미가 상당히 컸다. “, 그래서 그때 그 인물들이 그런 대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동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복선을 바탕으로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 김병균

"최초의 만찬'은 근대 일본 식민통치 시기 이후 해방 전후의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사건들과 허구적 상상력을 보태 재구성한 드라마입니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이 땅의 비극이 잉태된 혼돈의 시기이자, 그 이후 우리 사회 부조리와 남남갈등의 역사적 뿌리가 된 해방공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극최초의 만찬'은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만일 우리라면 그 시절 과연 무엇을 하여야 했는가?" 하는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70여 년 전 청산되어야 할 비겁한 역사를 단죄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는 좀 더 정의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토착 왜구들 따위의 비겁한 변명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는 일 따윈 없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역사적 청산이야 말로 혁명의 역사이며 고로 고난의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우린 꿈을 꿉니다. 반민특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하여 역사적 정의가 언젠가는 기필코 회복될 수 있을 것임을...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관객 사이에서 가상의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는 지점에서 우리의 연극은 또 다른 의미의 "기억의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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