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왕의 약혼녀였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 파혼되고 다른 이와의 혼인을 강요 받고 있던 민갑완은 외삼촌 이한현과 함께 부석사로 오게 된다. 민갑완의 기분 전환을 위함이라 총독부에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상해로의 망명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석사에서도 여전히 일본의 앞잡이 송씨로부터의 감시는 계속 되고 있고, 아침 부석사에서는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의에 의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발굴 작업 중 무량수전 앞에 선묘의 전설과 같이 석봉이 발견되고 조선인 인부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발굴 작업은 중단이 된다. 그로 인해 천년간 잠들어 있던 신묘가 깨어나고, 천년 간의 시간을 모른 채 의상대사를 만나러 민갑완이 머물고 있는 조사당으로 찾아간다. 이후 선묘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이랑을 통해 그 동안의 일들을 듣게 된다. 일본인 사학자 시게오와 함께 조선인 청년 이선규는 발굴작업 일로 부석사에 오게 되고 그리던 중 사소한 오해 이한현과 충돌하게 된다. 이한현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인 이선구는 지금 까지 일본에게서 교육 받아 온 역사관이 흔들리게 되는데….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발족시킨다. 일본에서 교육받은 청년 역사학자 이선규를 중심으로, 그들이 그렇게 허구라 주장했던, 삼국유사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신화와 설화가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보려 한다. 어쩌면 작품에서 스케치의 말처럼 역사란 실제론 과거를 통해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 아닌 가려는 길이 정당화를 위해 지나온 길을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다 작품 안에서 조선총독부 지배 하에 있는 대한제국과 같이 처지인 민갑완이 절망 속에서 상해로의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을 수호해 주고 있는 선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었다. 어쩌면 선묘란 존재는 부석사 안개 속에서 민갑완이 본 꿈이거나 환상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본래는 실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강한 확신과 믿음을 주어 목표로 이끈 것은 분명하다. 우리에서 있어 신화와 설화란 지금까지 이러한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것이 ‘사실이다, 허구이다.'의 논의를 넘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달빛 안갯길’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이다. 제목인 ‘달빛 안갯길’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주 부석사의 달빛 안갯길을 뜻한다.
일본인 사학자와 그의 제자 조선인 이선규는 함께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발굴 조사를 위해 영주 부석사로 간다. 그들이 향한 부석사에는 영친왕의 약혼녀였으나 강제로 파혼 당한 민갑완과 그녀의 외삼촌이 상하이로의 탈출을 계획하며 묵고 있다. ‘달빛 안갯길’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조선인 이선규가 총독부 산하에서 조선사편수회 일을 하면서 역사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한 축이다. 또 한 축은 만갑완이 부석사에서 탈출할 날을 기다리다가 의상대사와 선묘의 전설 속 선묘를 만나는 이야기다.
따로 진행되는 듯한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조화롭게 보이는 이유는 결국 ‘달빛 안갯길’ 속 모든 이야기는 ‘역사’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만갑완이 선묘와 만나는 ‘환상’에 해당하는 부분과 이선규가 역사를 편찬한다는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화가 역사에서 가지는 가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가 된다. 시게오는 진실한 역사를 그려내는 것보다, 일본 역사 속에 조선 역사를 포함하고 식민지 역사를 합리화하는 데 혈안이 된 역사학자다. 역사는 곧 정신이다. 마치 자신의 부모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듯, 역사를 보며 자신의 앞날을 꿈꾸는 것이 국민이다. 이선규는 그의 제자이고, 그저 진실한 역사를 그려낸다는 생각 하나로 부석사에 온다. ‘사실’에만 몰두하던 이선규는 부석사에서 겪은 사건을 통해 점점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신화란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신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맥락과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사실에만 집중하던 이선규의 역사관을 뒤흔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이다. 만갑완을 돕고, 이선규의 역사관을 흔드는 역할을 하는 선묘. 선묘가 보여준 판타지는 이 시대가 가장 원하는 판타지다. 세상이 올바른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선묘는 내내 도와준다. 역사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현시대에,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역사로 갈 수 있게 도와준 선묘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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