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향해 도약하는 하람호를 보며 꿈을 키워나가던 '하진'은 같은 반 친구인 '사라'와의 풋풋한 인연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하진은 성인이 된 이후 조금씩 변해가는데...
막연하지만 아름다웠던 세계가 사라져간다. 발붙일 곳 없이 방황하는 사라와 하진이의 발자국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가보자, 아무것도 없는 땅으로, 행성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희곡에서 그려지는 우주와 행성에 대한 이미지들, 신선한 캐릭터들! 주인공들의 자연스럽고 담백한 대화가 작품 전반의 서정성을 흐르게 하며 절제된 묘사, 절제된 장면 사용으로 관객이 이입 가능한 감정적 여백을 만들어낸다.
<사라의 행성>은 우주를 가져오지만 인간을 향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김마딘 작가의 특징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주요인물인 하진과 사라의 관계를 보자. 두 사람은 청소년시절부터 서로의 내면을 소통하던 사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이. 그렇다고 해서 썸을 타거나 이성적인 사랑으로 사귀는 관계는 아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정말 잘 통하는 친구 사이.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각자의 삶에 적당히 관여하고 적당히 무심하게 살아간다. 하진은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또 대학을 그만두고 취업을 하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스페이시티즌이 되고 싶었던 하진의 꿈은 사라지고, 원하지 않던 폭력에 휘말리기도 하며, 사람들과 잘 섞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진의 내면에 점점 커진 것은 과연 자신이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인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등등의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질문 뿐이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침잠해가는 하진과 달리 사라는 열심히 살아간다. 하진에게 자신이 다른 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외모와 삶에 적극적인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 나가는 사라는 그저 이곳, 예쁜 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 더 가지려고, 더 안정적인 삶이 되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하진이 힘들 때 찾아오면 언제나 곁을 내주는 인물이다.
이렇게 보면 얼핏 오래된 평범한 남녀 친구의 모습 같지만 두 가지를 주목하면 둘의 특별한 관계가 확인된다. 첫째는 사라의 정체성, 둘째는 하진의 믿음이다. 사라는 작품의 설정상 외계인이다. 지구인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넘어온 외계인. 구체적인 설명과 설정은 없지만 지구라는 예쁜 별이 좋아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이질적 존재가 사라이다. 사라에게 찾아와 계속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자고 재촉하는 라몽은 사라가 외계인임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인물이다. 이들이 어떤 별에서 어떻게 왔고 무엇으로 행성 사이를 이동하는가 등의 과학적 설명과 전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다른 별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정확히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하진은 사라의 말을 믿는다. 사라가 다른 별에서 왔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완전히 믿어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허무맹랑하고 허황된 이야기인데도 하진은 왜 사라의 말을 믿는 것일까? 스페이시티즌이 되고 싶다는 욕망, 우주로 향하고자 한 하진의 꿈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리고 우주에 대한 애정은 항상 무시당해왔지만, 그래서 점점 꿈을 잃어가는 하진이었지만 사라의 이야기만은 믿어줬다. 하진은 외계인 사라가 하는 말을 믿어준 유일한 지구인이다. 이 단순한 관계가 실은 중요한 은유로 읽힌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준 외계인의 존재. 다른 사람들은 비웃어도 하진은 믿어준 사라와 사라의 행성. 이것은 하진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라나 라몽이 흔히 봤던 SF영화 속 특별하게 생긴 외계인이 아닌 것은 궁극적으로 사라와 사라의 행성이 하진의 꿈, 희망, 우주였기 때문이다.
견고한 믿음을 갖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 어느 순간 현실과 부딪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잊어버린 꿈과 이상이 사라의 행성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사라가 살아온 지구와 새로 찾아가는 행성은 하진이 잊지 않으려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믿고 있는 하진의 꿈이자 우주였다. 사라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먹을 때 메시지를 받고 찾아온 하진과의 만남은, 비록 나빠지고 황폐해졌지만, 그리고 더 황폐해질지도 모르지만, 꿈을 찾아서, 꿈이 뭐였는지 다시 찾아보려는 하진의 의지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흔히 표현하는 ‘너는 나의 우주’라는 말은 <사라의 행성>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말인 셈이다. 하진이라는 지구를 중심에 놓고 사라라는 위성 혹은 달을 중요한 관계로 설정한 후, 하진의 내면이 황폐해지는 것을 점점 나빠지는 지구로 빗대면서 한편으로는 변치 않고 지구를 도는 위성을 꿈이나 삶의 이유로 은유 한 것이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이 결국은 하나로 겹쳐졌다. 이 작품의 따뜻한 분위기, 누군가를 슬며시 토닥이며 위로하는 정서는 바로 하진과 사라의 관계, 즉, 둘인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인 인물의 교감과 겹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에 대해,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설정이었다. (작품리뷰 : 배선애, 연극평론가)
작가의 말 - 김마딘
세상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라는 개인은 어딘 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어디가 내 자리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마음속에 품었던 작은 믿음도 어느 순간 사라질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 휩쓸리다가 어디에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곳이 가능성의 땅이었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어디에 자리하게 될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 아니면 더 황량한 세계?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지금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Q. '하진'이 근본적으로 꿈꿨던 것은 무엇일까요? (엄마처럼 우주로 나가 모험하는 것, 사회의 구성원으로 의미를 찾는 것 등)
-작가 : 하진이의 꿈은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직하고 살 수만 있어도 충분한 꿈이죠. 어쩌면 하진이는 우주를 향한 꿈을 품을 수만 있다면 어떤 자리든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의 세계가 그런 모습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고 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도 괜찮으니 나의 세계를 잃지 않는 것. 그게 근본적인 꿈일 수 있을 거 같아요.
Q. 하진과 사라의 관계는 잔잔하다가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진에게 사라는 어떤 의미일까요.
-작가 : ‘바로 옆에 있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진이의 소설적인 세계가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 이기도 하고요. 현실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입니다. 단순히 하진에게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사라는 행성의 숨소리를 감각하는 인물이거든요. 하진이가 겪는 개인적 차원의 경험을 세계의 범위, 우주의 범위로 확장해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보면 사라가 살았던,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행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로 하진에게 있어서 사라는, 유일한 친구이자 거대한 우주이기도 하죠.
김마딘 2022년 <나의 우주에게>로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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