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진주 '이사' (단막극)

clint 2023. 2. 21. 21:16

 

 

레즈비언 커플의 이별 이야기인 진주 작 <이사>

몇 년간 함께 살던 연인인 희수와 이영은 이별을 맞이한다. 이사를 나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희수와 그녀가 빨리 가지 못하게 시비를 거는 이영은 곧 말다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문제만 터트리고 희수는 떠난다. 그 와중에도 레즈비언 관계를 개의치 않으며 김치를 보내주는 희수 엄마가 이영이가 자기가 담은 김치를 좋아한다며 보내주는데 싸우다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김치 보냈는데 잘 받았느냐며 전화까지 한다.   

 

 

배우와 작가의 관계로 만나 애인 사이로 발전한 두 여인이 결국 이별을 맞는 과정을 다룬다. 함께 살다 전직 배우가 이성애자 남자에게 결혼을 가는 상황. 대필 작가로 근근이 생계를 꾸리는 작가는, 그녀를 잡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들의 지난한 삶,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 등이 묻어난다. 어떤 이들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래야 하기 때문에 이별하기도 한다. 열심히 발버둥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지겨워서, 나를 떠나야 네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일 때 이 사회에서 나의 사랑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고, 이유 없이 쏟아지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나의 옆에서 상처받고 피 흘리는 너의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 더욱 서러운 그런 사랑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네가 지겹다 말하는 모습에서 나는 뚝뚝 떨어지는 미련과, 그럼에도 계속되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보았다. 애인이 끝내 짐을 챙겨 집을 나간 뒤 남겨진 이가 느낄 공허와 후회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그를 떠났을 이의 미련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다가와 괴로울 지경이었다. 왜 인간은 그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걸까. 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해야 하고 계속해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야만 하는 걸까. 가끔은, 성장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더 이상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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