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지방의 한 저수지 근처다.
새벽, 해뜨기 전 컴컴한데 세 남자가 무거운 가방을 힘들게 들고 들어온다.
대충 그 가방 속에는 사람의 사체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망치로 확 쳐서 죽였다는 얘기가 나오고 충격적인 것은 일행 중 한 명인
연우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고 친구인 지호와 정민이 도와준 것이다.
알바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은 연우 아버지의 아파트를 노리고 범행한 것이다.
아파트가 팔리면 돈을 나눠갖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들은 가방에 돌을 채워 넣고 저수지에 던진다.
그런데 그 증여서류가 가방에 같이 있었고 돈도 못 받고 모두 살인죄로 몰릴 처지다.
연수가 풍덩 물에 들어간다.
얼마 후, 그가 나와서는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잘 했다고 했단다. 그리고 전부터 너에게 아파트를 물려주겠다는 서류도 준비했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연우가 헛소리 한다고 하나 잠시 후, 아버지가 물에서 나온다....
작가의 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된 후에야 겨우 쓸 수 있었습니다. 고치는 과정에서도 자꾸만 삐거덕거려 좀처럼 확신을 갖기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끝까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궁금해서 썼습니다. 이상하게 매일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커다란 웅덩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희곡을 씁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희곡을 씁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여전히 외롭고, 금인지 돌인지 모를 것들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럼 에도 아주 작은 꿈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또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시 또 끝을 맺고 계속 그렇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실적인 작품보다 추상적이고 우화적인 작품을 선보인 윤미희 작가의 특장이 이 희곡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정민과 지호를 내버려 두고 가장 먼저 저수지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연우는 종이를 한 장 들고 온다. 물속에서 아버지를 만났으며,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미 현실/ 비현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자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수신자는 아들인 연우이고 정민의 이름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편지의 수신자, 그리고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는 세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연우의 말에 대한 응답처럼 “사는 거 별거 없다. 그냥 살아라”라고 하는 유령- 아버지의 목소리는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들의 발버둥을 무화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몸을 맡겨 흘러가다 보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현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위로이다. 현실을 바꿀 수 없지만 저수지로 들어오려는 발걸음을 지연시키고 싶은 약간의 위로 말이다. 세 사람의 사연이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안간힘을 쓰다 마지막에 온 곳이 저수지라는 점에서 삶이 무거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들을 위로하는 유령-아버지는 이 연극에서 유일하게 너라는 타자를 인지하는 인물이다.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심연에만 골몰하여 다른 이를 헤아리지 못할 때, 유령-아버지는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의도나 마음을 알았을 텐데도 이들을 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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