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공연하기로 한 배우들의 술집 이야기이다. 공연을 20여일 앞둔 시점에서 햄릿이 연락이 두절된 채 행방불명 중이다. 햄릿이 나타나지 않는 2일째부터 일주일 사이의 술집에서 벌어진 연극쟁이들의 사는 이야기이다 연습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분위기도 썰렁하다. 매일 일상처럼 찾아가는 술집에서 배우들은 공연에 대한 걱정과 일상의 모습을 토해낸다. 그리고 계속되는 햄릿의 연습 불참으로 사람들 사이에 연습분위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고, 배우들끼리 다툼도 일어난다. 그러던 중 술자리에서 기섭이 햄릿 없이 햄릿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꺼낸다. 게다가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민호는 아예 연출도 바꾸고, 일주일정도 공연을 연기해서라도 햄릿 없는 햄릿 공연을 해보자고 지수에게 제안하면서 지지를 부탁한다. 결국 연출이 작업에서 빠지게 되고 햄릿이 잠적한 지 7일째 되는 날, 호프집에서 대책회의가 열린다. 대책회의 도중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로 지수와 주석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화가 난 주석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남은 배우들은 다수결에 의해 햄릿 없는 햄릿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한편 술 취한 주석은 사람들이 없는 빈 포장마차 안을 들여다보고 나오면서 자신이 유령이라며 소리치며 길을 걷는다
<술집 – 돌아오지 않는 햄릿> 이라는 제목은 극이 벌어지는 장소와 사건의 시발점인 ‘햄릿의 부재’ 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내용 상의 연관성은 단지 이 뿐인지라 제목으로 메시지를 예상해보는 내 버릇에는 다소 어긋난 경우였다.
극은 매우 간단한 몇 마디 문장으로 축약이 가능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극으로 준비하는 한 소규모의 극단이 주연인 햄릿 역을 맡은 배우의 연락두절으로 내적인 분쟁과 마찰을 겪는다. 이는 외적인 충돌과 분열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지막 발악과도 마찬가지, 즉 금전적 문제와 극 자체의 와해, 나아가서 극단의 와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이들을 술집으로 모이게 했다.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이게 채택이 되면서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즐기는 코믹 장르의 연극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극의 진행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소소한 대화의 연속, 번외 격인 코믹한 설정으로 등장하는 두 명의 배우의 열연으로 자연스럽게 극중 인물들을 파악하게 하고, 여기에 부드럽게 ‘햄릿의 부재’ 라는 갈등요소 – 햄릿 역의 주연배우 연락두절 – 를 투여한다. 이러한 어둠을 끌어안은 채로 계속해서 빛을 보여주던 이야기의 흐름(즐거워보이는 일상, 술자리, 생일파티 등)은 결국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 공연이 점점 다가오게 되자 그 어두운 그림자를 서서히 비추게 된다. 극 중 배우들의 분열과 마찰, 몸싸움까지 이어지는 심각함에 관객들은 눈길을 돌릴 새도 없이 숨죽여 상황을 지켜본다. 새로운 대안으로 내놓은 “햄릿 역을 삭제한 햄릿 리메이크 공연” 은 갈등을 심화시키고 심지어 중심 배우들의 반대와 하차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 역시 젊었던 날 연극에 온 몸을 바치던 예술혼이 살아있기에 눈물을 흘리며 진실을 나누고, 결국 다시금 합류하여 성공적으로 공연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로 내용이 마무리된다.
예술은 궁핍한 삶 속에서 태어나는 한 송이 꽃이라고 생각된다. 하루 하루 삶을 연명하는 배우들은 환상적인 무대를 위해 비현실적인 자신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 무대 뒤의 모습들은 이토록 인간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 역시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나,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시커멓게 물들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기 위해 배고픔을 참아내고 세상의 멸시를 감내하는 것이다. 무대 뒤로 숨어있는 이러한 진솔한 이야기를 느끼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은 지금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공연되어왔다.그러나 공간을 바꾸어서 술집이라는 공간에서 올려진 ‘햄릿'은 어떤 모습일까? 이 작품은 삶과 연극 그리고 배우들의 무대 밖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그들이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솔직하다. 세상과 부딪치며 겪게 되는 숱한 좌절 속, 인간이 갖게 되는 원초적인 갈등과 꿈틀대는 본능을 ‘술집'이라는 스스로에게 가장 개방적일 수 있는 장소를 빌어 마음껏 뿜어낸다. 무대 위에선 항상 타인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던 배우들이, 배우가 아닌 한 인간으로 마주설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그 순간 관객들의 막혔던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공감형성 리얼리티가 극에 달한다. 또한 연극<술집>을 보면서 관객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공연 1막에서 5막까지 이루어지는 구성 그리고 ‘햄릿' 대사를 차용한 극의 분위기는 고전적 느낌과 모던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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