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일걸 '지느러미 달린 풍경'

clint 2018. 3. 25. 09:24

 

2006 전남일보 희곡 부문 가작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부둣가의 포장마차. 그 어촌마을의 어부인 김씨는 포장마차 주인인 아낙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며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치매 걸린 노인은 허공에서 새우잡이를 하며 망망대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낙은 원래 산골마을에서 살다가 댐이 건설되면서 자신이 바라던 이상과 꿈이 사라진다. 김씨는 자신이 살던 옛동네를 그리워 하며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노인은 망망대해 속에서 자신의 꿈인 고래를 찾기 시작한다. 인어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후회하며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당선 소감
1995년 모 신문사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을 때 기자와 심사를 맡으신 윤이현 선생님께 맞춤법을 지적받았다. 나의 신춘문예 도전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채 나는 오직 열정만 가지고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어떻게 써야 되는지 막막했다. 책을 더듬으며 홀로 문학을 공부했다. 지방대에 들어가 내 얼굴에 먹칠만하고 나온 나에게 문학의 벽은 참으로 높았다. 실상 신춘문예라는 시험장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강의실이었고, 거듭되는 시행착오가 내가 배운 교육의 전부이다. 수많은 낙선이 나의 힘이었다. 쓰러질 때마다는 나는 다시 일어났다. 쓰러진 만큼 강하게 일어섰고,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했다. 사회적 지진아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문학을 고집했고, 그리하여 오늘 이 자리에 섰다. 공황장애 때문에 연극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나를 뽑아주신 차범석 선생님께서 감사드린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내게 감당키 힘든 영광이며, 앞으로 치열하게 희곡을 창작하는 것이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라 믿는다. 나의 신춘문예 도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춘문예사에 한 획을 그은 다음 나는 신춘문예를 뒤로 하고 가슴 깊이 품어둔 비수를 꺼낼 것이다.


심사평

풍부한 상상력…가능성 무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나는 대공원으로 간다'(김은미), '태아령'(김주희), '지느러미 달린 풍경'(최일걸), '편의점'(권진희), '잊혀진 시간'(김민영), '카프리초스'(송강희) 모두 6편. 저마다 개성이 있고 무게를 느끼게 하는 희곡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수준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심사평을 쓸 때마다 느꼈던 소감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무엇보다도 희곡문학이 시나 소설이나 수필과는 분명히 그 형식이 다르다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부족하다. 더구나 방송극본하고는 확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혼돈을 하고 있다. 예컨대 단막극에서 암전이 그렇게 자주 구사된다는 것은 기초적 상식이 의심된다. 더구나 희곡의 말미에서 막이 내리는 판국에 '암전'으로 표시하는 무지에 이르러서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암전은 극 진행의 과정에서 쓰는 수법이지 종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곡(연극)은 철저한 인간 관계로 이뤄진다는 기본조건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의 성격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진전이 극적인 효과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희곡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등장인물 사이에 아무런 상관성도 없이 제멋대로 자기 얘기만 내뱉는 대화형식이 곧 희곡이라고 속단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은 얕은 대신 작가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잔소리가 범람하는 상태에서는 극적인 감동을 만나기란 힘들다. 그 수법이 사실적이건 추상적이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작품이 무대 위에서 형상화되어 관객 앞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는 더 선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들려줄 필요가 있는 인물이나 말이 아니면 대담하게 생략하거나 절제를 지키는 게 희곡의 기본일진데 필요이상의 잔소리나 수식과잉이나 인물의 등장은 희곡의 생명을 압사시킬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에 아깝게도 당선작을 뽑지 못한 채 '지느러미 달린 풍경'을 가작으로 뽑게 되었다. 희곡으로서의 결함이 있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상징성, 그리고 대사의 시적인 표현력과 인생에 관한 진지한 통찰력들이 앞날의 가능성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희곡을 난해하게 쓰는 게 문학이라고 착각하기 보다는 평범 속에서 비범을 추구하는 겸손과 진솔함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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