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현철 '꿈꾸는 식물'

clint 2018. 3. 25. 09:16

 

2002년 동아신춘문예 당선작

 

 

작가의 글

꿈을 꾼다. 혼자서 꾸는 꿈은 쉽게 잊혀지거나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마침내 현실이 되어 버린다. 오랫동안 꿈을 꾸어온 일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항상 원고지와 컴퓨터 앞에서 꿈을 꾸었다. 언제가 이 활자들이 무대에서 살아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연출가, 배우, 스텝들과 함께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상상 속의 장면들을 현실로 구체화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꿈꾸는 식물>은 일상적인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친구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사랑한다. 이러한 사랑으로 인해 가끔은 서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사랑과 상처,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보려고 했다

 

 

 

 

 

 

심사평      윤호진(연극연출가·단국대학교 연극과 교수)       

올해는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 모두들 어지러운 사회를 반영하듯 작품도 어지러울 뿐 맑고 힘있는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사회적 비리, 빈부의 격차, 취업 난, 자아탐구, 가정문제 등이 주제였다. 정신병원의 환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중국식당 배달원, 소매치기에 이르기까지 밑 바닥 삶을 다루는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고 사극이나 모노드라마도 적지 않았다. 작품마다 살인사건이나 인질극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았고 그래서 주옥같아야 할 희곡의 대사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이나 의미 없는 가벼움으로 채워지는 부족함을 보였다. 많은 응시자들이 희곡의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와 신중함이 결여된 것 같아 아쉬웠다. 몇가지 아쉬움에도 김현철의 '꿈꾸는 식물'을 가작으로 선택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장점 때문이다. 다른 모든 작품에 비해 유일하게 읽으면서 또 읽고 난 뒤 그래도 여운이 남는다.모두 4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작품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와 시어머니 그리고 일가족과 친구들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아내가 남편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도입부는 작품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2장에서 꿈을 통해 남편의 생각을 전달했던 점이나 시어머니와의 현실적인 갈등 그리고 고모 댁의 등장은 희곡의 갈등구조를 형성하기에 적절한 캐릭터들이었다. 시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스케치 기법이나 석고상을 이용한 남편과의 3자 대화 그리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유 있는 전개는 이 작품의 개연성을 가능케 한다. 욕심 없이 정법으로 마무리 한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당선작이 아닌 가작에 그친 것은 주제와 내용면에서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앞으로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는 과감함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나가길 기대한다.

 

 

      

김현철
△1969년 경남 고성 생
△1996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이근삼 희곡론)
△2000년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당선소감  
'와유(臥遊)'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생각하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해진다. 물론 육조시대 종병(宗炳)이 말했던 것처럼 '뜻을 맑게 하고 도(道)를 다시 체험하자'는 고매한 경지까지 아직 이르지 못했다. 단순히 한가하게 누워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지나간 삶에 대해 잠깐 돌아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늘 이 '와유'를 생각하며, 좀더 여유롭게 살려고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요원한 일인 듯 느껴진다. 삶의 여유와 함께 인간의 넉넉함도 내게는 항상 중요한 화두였다. 비어 있는 인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따뜻함으로 주변의 차가움에 온기를 전해 줄 수 있는 인간. 차갑고 혹독한 현실을 살면서 과연 이러한 인간상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항상 작품을 구상해왔다. 아직 생각이 제대로 여물지 못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엮어내지 못했다. 계속 끊임없이 이러한 화두를 생각하며, 여유롭고 넉넉한 인간 그리고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찾고 형상화하는데 천착하려 한다. 이 자리를 빌어 문학의 길을 열어주시고, 학문의 열정을 가르쳐 주신 서연호 선생님께 우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본인보다 더 기뻐해 주신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김선생님, 선배님과 후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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