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광섭 '반지의 전설'

clint 2016. 12. 2. 08:36

 

두번째 입양아를 영입하고자 미국으로부터 부라운 부자(아들 죤은 첫 번째 입양아)가 한국에 온다.
부라운이 입양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입양대상자인 한형옥(5세)이 수용된 보육원에서는 한형옥이 미국행을 거부하는 바람에 보육원장 이하 특히 담당 보모인 윤혜선의 애를 먹인다. 보육원을 찾아간 부라운은 아들 죤에게 자신이 굳이 한국인 전쟁고아을 입양하려는 내력을 이야기하여 아들 죤을 감동시킨다. 더구나 이번 한국행은 혼기를 맞은 죤의 배우자를 한국여성 중에서 찾으려는 신부 찾기를 겸한 것이었다. 일단 양아버지가 될 부라운과의 상면을 위해 보모 윤혜선은 한형옥과 함께 부라운 부자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는다. 이때 부라운은 보모 윤혜선의 얼굴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잔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부라운의 명으로 죤이 잠든 한형옥과 함께 보모 윤혜선을 보육원까지 전송한다. 보육원에서 돌아온 죤의 손가락에서 부라운은 너무나도 낯익은 반지를 발견한다.
그 반지는 부라운의 육군사관학교 졸업기념 반지, 6.25 당시 생명의 은인이었던 노파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던 것, 그것을 노파의 손녀 윤혜선이 지니고 있다가 한형옥에게 작별 기념으로 주었던 것을 죤이 받아 보관했던 것이다. 비로소 생명의 은인인 노파의 손녀를 발견한 부라운은 넘치는 기쁨에 어쩔줄을 몰랐고,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 보육원 인사도 후일로 미루기로 했던 부라운은 그동안 죤도 호감을 갖게 된 윤혜선이 바로 자신의 며느리임을 직감한다. 마침내 부라운 부자는 반가운 만남을 위해 보육원으로 달려간다.

 

 

김광섭

 

민족상잔의 환난이었던 6.25사변을 전후하여 이땅에는 숱한 사상자와 전쟁고아, 전쟁미망인이 발생했고 1953년 7.27 휴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간단없는 북한으로부터의 무장공비 남파로 계속 난민과 고아 등 전쟁피해자를 양산해 냈다. 그러나 전재 복구에도 급급하면서 열악했던 국력으로 이땅에서는 그들 전쟁의 유산인 미망인과 고아 등을 구제해야 할 국가적 사회적 여력이 없어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고아입양아사업은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으로 파급되어 갔고, 인도주의를 표방한 이 사업은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게 되어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불이 붙게 되었다.
그동안 전개되었던 고아입양사업, 그것은 순수한 인도주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6.25침략전쟁으로 국운이 백척간두에 있을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한 미국 군인이 사지에서 허덕이던 그를 구사일생으로 구원해준 한국인과의 끈끈한 정을 잊을 길 없어 한국출신 전쟁고아를 입양하는데 앞장서게 하였고 마침내 생명의 은인이었던 노파의 손녀를 만나 아름다운 인간애에 꽃을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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