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백중사 이야기'

clint 2016. 11. 22. 07:58

 

 

“군대에 와선 군발이로 사는거야.”
“함부로 생각을 말하지마. 아니, 생각 자체를 하지 마.”
제 스스로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생각하는 백중사. 휴가도 반납하며 고지식하게 군생활을 하는 백수길에게 부대장은 직업군인이 될 것을 제안한다. 그에게 하느님과도 같은 부대장의 제안은 곧 명령이었고, 제대 후의 삶이 막막했던 그는 더욱더 군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군생활에 임한다. 최병장, 박상병, 김일병, 정이병은 계급과 명령, 복종이 전부인 집단 안에서 마음의 갈등은 표현할 수조차 없는, 그들은 바로 군인이다. 백중사는 그들에게 아내인 영자를 미행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사적인 일에 공적인력을 사용하는 데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그들이 백중사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켜보던 이병장은 부대장을 찾아가 백중사의 투서를 전한다.
몇 년 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병장과 정이병. 둘의 인사는 안부와 함께 자연스레 백중사의 소식으로 이어지는데...

 

 

 

 

 

 

<인류최초의 키스><웃어라 무덤아><일주일>의 작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극대화하여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내는 힘이 있는 희곡에 인물 저마다의 사연이 살아나는 힘 있는 연출력이 더해진다. 군대라는 제한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여성작가와 여성연출가의 만남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데... 두 여자가 벌이는 여덟 남자의 알 것 같으면서도 차마 몰랐던 이야기. 연극 <백중사 이야기>는 군대라는 창틀 안에 여성의 시선이라는 유리로 된 창문을 두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창문 속에서는 계급이란 이름으로 서로 갈등하고 흔들리며 이해하고 용서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 과정의 끝없는 갈등과 모순 속에서 찾아낸 단 한 가지 진실은 시간이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다는 것.

 

 

 

 

 

이 작품은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이 낳은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여 준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백 중사는 술집작부 출신인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다. 그가 부대원들에게 아내를 미행하라고 지시한다. 명문대 운동권 출신으로 강제징집된 이 병장, 선배의 폭력에 길들여져 후배를 괴롭히는 박 상병,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는 신참 정 이병 등은 백 중사의 의처증과 폭력에 괴로워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있을 백중사 고연옥

 

백중사 이야기의 초고를 쓴 것이 1996. 딱 십 년 만에 이 남자를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는 미운 정 뿐인줄 알았는데, 얼마 전 연습실에 가서 이 남자를 만나고는 막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별의 서러움보다도 그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지난 10년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백중사 덕이었습니다. 백중사는 내가 아는 한, 이 세계의 무게를 전부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를 통해 어디든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지난 십년이 스쳐 가지만 글쓰기로만 본다면 그리 길지도 별로 힘들 것도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백중사 같은 사람이 저와 우리. 이 시대를 정화시키는 속죄양이 아닌가 하고... 희곡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읽어주신 문삼화 연출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비로소 백중사 이야기를 만나게 해주신 배우, 스텝, culture 여러분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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