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일홍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clint 2016. 11. 16. 11:03

 

 

 

 

1980년대 후반 이후, 크고 작은 극장 무대와 마당판에서 많은 관객들의 호응 속에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20세기 막바지에서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탄식을 삼키고 눈물을 훔쳐내며 달렸던 숨가쁜 상황들이 이 희곡 속에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이 희곡을 통해 독자들은 그 동안 4·3을 겪은 제주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깊은 질곡 속에서 영위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앞으로 4·3문학이 통일을 내다보며 평화를 선도하는 민족문학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나름대로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본다.

 


줄거리
1장
기섭이 애인 인애와 함께 방학을 이용해서 집에 내려 온다. 그의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가 살고 있다. 기섭은 인애에게 자기 식구들의 비정상적인 모습 즉, 어머니는 냉혈인간처럼 차고,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었고, 형 기태는 주색에 빠져 폐인이 된 삶을 살고 있으며, 누나 희옥은 간질병에 걸려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희옥이 2층에서 내려오다가 기섭을 발견한다. 함께 귤을 먹다가 방으로 올라가던 희옥이 갑자기 간질병 발작증세를 일으킨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가 이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아버지를 본 인애가 놀라자 기섭은 중풍에 걸려 휠체어에 타고 생활하시고 말을 못한다고 설명해 준다. 희옥을 눕히고 나온 포천댁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형 기태가 집으로 들어온다. 기태와 기섭이 아버지의 감금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을 때, 어머니 순오가 들어온다. 기태와 기섭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2층 감금에 대해서 따지면서 언쟁을 한다.
2장
희옥이 흰옷을 입고 인애가 자는 방을 기웃거린다. 누고?본 인애는 놀라서 소리 지르며 뛰어 나온다. 흰옷을 입은 희옥은 나직히 '새야새야'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인애의 외투를 발견하고 그것을 입고 좋아하다가 인기척이 들리자 황급히 벽난로 속으로 던져버린다. 아침이 되어 기태가 낚시하러 가려하자, 인애와 기섭이 따라나선다. 외투를 걸치려고 옷걸이를 본 인애는 외투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희옥이 벽난로 속에 집어 넣은 것을 안 기태는 혁대를 풀어 희옥을 마구 때린다. 마침내 희옥은 집 밖으로 도망을 간다. 누나 일로 기태와 기섭이 다투다가 기태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일을 폭로한다. 제주도 4.3사건 때, 좌익을 토벌하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좋아하게 되어 청혼을 한다. 어머니가 거부하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애인과 부모님을 좌익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누나를 임신하고 있던 어머니를 강간하여 결혼을 한다. 이에 어머니는 복수심으로 인해 아버지를 2층에 감금하여 고통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인애는 이 집안 내력을 알고 기섭의 집을 떠나려 하고 이에 기섭은 울부짖는다. 그런 기섭을 남겨두고 인애는 그 집을 떠나고 만다.
3장
포천댁으로부터 누나가 아직 들어 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누나가 임신했다는 것 또 그 아버지가 형일지 모른다는 것을 듣고 기섭은 경악한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 희옥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낚시꾼이 희옥의 변사체를 업고 나타난다. 누나의 죽음으로 기태와 기섭이 심하게 다툰다. 그러다가 기태가 이층으로 올라가 권총으로 자살한다. 형을 안고 기섭은 어머니를 향해 오열한다. 어머니의 복수심을 이제 끝내고, 당신의 눈물을 보여 달라고. 어머니는 얼굴을 가리고 오열하고 아버지는 2층에서 울부짖는다.

 

 

 


(작가의 말)//장일홍
<<고통의 축제>><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는 실존인물K씨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6년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공항주변마을 사람들의 집단이주단지였던 M부락으로 이시를 갔는데(내 생애에 있어 일곱번째의 이사였다.)바로 앞집에 K씨가 살고 있었다. 마침 K씨의 부인과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되어 두달에 한번쯤 구역예배가 열리는 날, 그 집을 방문하곤 했다. K씨는 중풍환자로 일년 열 두달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지내는데 손님앞에서도 마누라에게 진한 이북사투리로 욕설을 퍼붓고 째려보는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눈길이 마주치면 소름이 돋는 매서운 시선이었다.) 출구없는 갇힌 방안에서 덫에 채인 짐승처럼 울부짖는 이 K씨에 대해 나는 묘한 호기심과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런 감정은 자꾸만 작품을 쓰도록 충동질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사가 뿌린 씨앗이 나쁜 열매를 맺으면서 그 열띵배가 나무 자체를 고사시켜버리는 과정을 한 가족을 파탄을 통하여 드러내 보이려 했다. 아울러 전환기의 모랄과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한는 인간의 존재양식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선배 작가들이 내게 주는 충고는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4.3이야기는 이제 그만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민하면서 글을 쓰지 말라'는 거다. 4.3은 제주지역에서 일어나나 국지적인 사건이므로 한국인의 보편적인 관심사항이 될 수 없고, 그러잖아도 따분하고 짜증스런 일상에 매몰된 관객들이 연극에 기대하는 건 고민이 아니라 재미라는 걸 암시하는 충고하고 나름대로 새겨듣긴 하면서도 40여년을 섬땅에 붙박아 살아온 나로서는 통한의 역사-4.3의 결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수 없으며, 예술가는 운명적으로 저주받은 자이기에 공퉁과 고뇌를 스스로 선택하고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건 열정과 광기에 휩싸인 인간, 위선과 허식의 팬티를 벗어버린 벌거벗은 인간이다.<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는 그따위 벌거숭이들이 벌이는 고통의 축제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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