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희곡집 '第十八共和國'을 낸 후, 이제 거의 십년만에 두 번째 희곡집을 내게 되었다. 그간 많은 극을 썼다. 그러나 막상 희곡집을 내게되어 그 동안에 공연된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니 선뜻 만족할 만한 것이 없다. 여기에 수록된 여덟편의 작품도 내 스스로 자신이 있어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간 비교적 많이 공연되었고, 말이 오간것을 고르다 보니 자연 여덟편이 되었다. 연극의 발판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희곡을 쓴다는 사실이 맹랑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모든 역경을 뚫고 고질적인 독선과 싸워가며, 이 땅에 연극을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는 젊은 연극인들은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었다. 이렇다할 경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는 희작에, 내가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젊은 연극인들을 통해 연극계의 장래에 어떤 희망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은 아벨만의 재판을 제외하고서는 희극(喜劇) 이다. 희극을 차선의 연극형태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풍토라, 꾸준히 희극을 발표하는 동안 오해도 많이 샀고,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희극을 쓰는 이유가 뚜렷하다. 뿐만이 아니라, 관객석을 메운 관객들의 즐거운 반응을 대할 때마다 나는 한국에 있어서의 희극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비극(悲劇) 과는 달리, 희극이란 특히 연기자의 능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도 체험하였다. 결국 연극이란 한 작품의 내용이나 그 질보다는 이를 소화하고 표현하는 연기자와 연출가에 의해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의 노고를 무엇보다도 앞세우고 싶다. 이 보잘 것 없는 책을 내는데 도움을 준 진흥원과 선뜻 출판을 맡아 준 범한서적주식회사의 김윤선 사장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1976년 10월 저자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칩거하려던 이주몽의 생활 태도는 어느 일요일 아침 느닷없이 침입한 강도 때문에 변화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주몽은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처럼 관심을 두지 않으려던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최대의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고, 마침내 관심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되면서 세상으로부터 잊혀져 가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주몽의 집에 침입한 강도는 이주몽을 인질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강도는 칼로 이주몽을 위협하여 그로 하여금 밖에서 대치하고 있는 경찰에게 총을 겨누게 하면서 가까이 오면 쏜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외부 사람들에게 이주몽이 범인임을 확인시킨다. 드디어 사건 현장에 텔레비전 중계 시설이 차려지고 아나운서가 뉴스 속보를 내보낸다. 그리고, 평소 이주몽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 싸롱 접대부 김말숙, 대학 후배 오충돌, 동네 구멍가게 주인, 대학 은사 박 교수, 부인 사경자 등이 차례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주몽의 평소 성격과 범행 동기 등에 관해 자기의 생각을 진술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주몽은 자기의 평소 성격이나 인물됨, 범행 동기 등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어처구니없게 과장되고 왜곡되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1950년대 재미 유학시절부터 장단막의 희곡을 꾸준히 발표해온 이근삼씨의 작품 경향은 그의 독특한 유우머 감각과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일찌기 우리 신극을 지배해온 구태의연한 사실주의와 양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희곡문화의 양식을 자유로이 차용하여 그 나름의 스타일을 개척해 왔다.
'일요일의 불청객'에서도 엿볼수 있듯이 작가는 극중 사건이 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애쓰는 대신 오히려 이 모든것은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시인하고 들어간다. 무해하고 선량한 한 시민인 주인공 이주몽은 우연한 강력사건에 휘말려 흉악한 살인범으로 몰리고 만다. 그는 처음엔 누명을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장본인인 그의 말을 미디보다는 파상적인 외적 증거에 의존하여 그를 흉악범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 가공할 얘기는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한 특수한 경우에 대하여 작가가 꾸며낸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날 현대사회가 빚어 놓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예시해 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는 또한 주인공 이주몽의 무간섭, 무사안일주의가 오늘날의 사회속에서의 붤가능하다는 점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 심지어 부인에게조차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던 이주몽의 시도는 무참하게 실패로 끝나고 만다. 강도가 침입한 다급한 상황을 맞게 되자, 이름이나 알자며 강도에게 관심을 보인다. 부인인 사경자에게도 새로운 출발을 권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충돌에게는 윤 이사의 추방운동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이주몽의 집에 강도를 개입시키고, 위장된 강도놀이와 경찰과의 대치 같은 우스꽝스러운 연극놀이를 통해 이기적이고 매사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모순을 폭로하고자 했다.
이근삼씨는 우리나라 극문학사상 불과 몇 안되는 다산적이면서 또한 독보적인 희극작가이다. 그는 일찌기 우리 신극을 지배해온 구태의연한 사실주의와 양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희곡문학의 양식을 자유로이 차용하여 그 나름의 스타일을 개척해 왔다. <일요일의 불청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작가는 극중 사건이 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앴는 대신 오히려 이 모든 것은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시인하고 들어간다. 이 연극의 가공할 얘기는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한 특수한 경우에 대하여 작가가 구며낸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사회가 빚어 놓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제시해 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는 또한 주인공 이주몽의 무간섭, 무사안일주의가 오늘날의 사회속에서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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