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비에르 비야우루띠야 '거짓말 같은'

clint 2015. 11. 24. 22:25

 

 

 

 

 

멕시코 현대 연극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하비에르 비야우루띠아 Xavier Villaurrutia (1903-1950)는 초창기 단막극을 엮어서 출판한<세속적인 小詩劇 Autos profanos>에서 알려지지 않은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고뇌와 죽음에 관한 강박관념을 상징주의적이면서 전위주의적인 극경향으로 다루고 있다. 죽음, 고뇌, 존재와 실재의 문제에 대한 탐구, 시간성 혹은 한시성, 인격의 이중성 등이 이 희곡집에서 나타나는 주제들이다.<세속적인 小詩劇 Autos profanos>에 희곡집에 수록된<거짓말 같은 Parece mentira>은 1934년에 쓰여진 비야우루띠아의 최초의 작품으로 역시 이와 같은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언뜻 보면<남편>의 변호사 사무실에 온 이유를 푸는 추리극과도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건이―<남편>과<부인>사이의 문제― 절정에 오르려는 순간, 즉 관객의 호기심이 최고조에 오른 순간에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열어놓은 채로 작품을 마무리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작가의 뜻에 따라오지 않고, 작품의 연결 고리를 스스로가 이어 가야하는 조금은 난해한 극이다. 거기에 단순한 극 구조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대사로 인한 난해성이 곁들여진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직원-호기심 많은 남자-남편>이 인간의 양면성과 인간의 존재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과 세 명의 부인이 들어오면서<남편>과<부인>의 실체에 관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작품은<남편>이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러나<남편>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이유가<직원>에 의하여 차단된 채, 곧이어<호기심 많은 남자>의 등장으로 이어지면서,<남편>은 부차적 인물이 되고,<직원>과<호기심 많은 남자>에 의해 작품의 첫 부분이 주도된다. 이 양자간의 대화를 통하여 작가는 처음부터 인간의 본질에 관한 관념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우선<직원>은 일상적인 일보다는 사고와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모든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접근한다. "서류를 준비하고 등사기를 돌리거나 손으로 하는 일" 등의 일상에서의 일을 아무런 의식 없이 수동적으로만 행하는 인간의 삶의 무의미성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서 정 반대의 속성을 띨 수도 있는 하나 이상의 자아(양면성)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 대중의 행태와 혹은 비록 양면성의 속성을 알고 있을 지라도, 애써 그것을 모른척하는 비겁한 인간 대중의 행태와 그것에 대한 탐색이나 탐구를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삶을 소비하면서 주어진 삶을 마냥 행복하게만 살려하는 인간 대중의 삶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인간 대중은 스스로가 느끼는 "행복이나 편리성, 혹은 번민에 대한 설명", 즉 자신의 모습에 대한 참다운 실상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직원>에게 있어서 그러한 인생은 별 가치가 없는 인생이며, 그러한 인생을 사는 인간은 결국 부재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인간성은 기본적으로 양면성을 띠고 있으며, 인간은 삶에 대하여 고통과 고민, 번민을 겪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탐구를 통해야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이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진정한 모습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을 때,<남편>이<직원>과<호기심 많은 남자>의 대화에 끼어 들어 이 문제를 부연하고 있다.<남편>과의 대화에서<직원>은 대중들의 일반적인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탈 일상적 思考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 진정한 의사 소통은 불가능하며, 오직 믿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만이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대중적인 일상적 사고의 틀을 깨고 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즉 익명성 때문에 오히려 본 모습을 더 잘 전하고 파악할 수 있으며, 친구란 "자신의 승리를 말하거나 자신의 패배를 숨기는 대상", 즉 자신의 표피적인 모습만을 나눌 수 있을 뿐이라는 기존의 사고 행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작품의 중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말 잔치에 연극적 사건이 첨가된다. 똑같은 모습을 한 세 명의<부인>들이 등장하면서,<남편>이 주동 인물이 되고 작품의 전개는 첫 부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남편>이<부인>들의 신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작품은 그들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추리적인 흥미를 야기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에 대한 관객의 열망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작품을 미궁속으로 빠뜨린다. 이것은 작가의 초창기 극의 대표적인 성향이다.
그는 한 작품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관객은 수수께끼를 사랑한다... 그 수수께끼를 놀이로 만들었을 때, 즉 관객들에게 스핑크스가 했던 '맞추어 보라. 그렇지 못하면 널 죽이겠노라'라는 위협을 했을 때, 관객들에게 그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남편>이 변호사 사무실에 온 이유는<부인>의 뒤를 캐기 위함은 밝혀졌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이유로<부인>이 변호사 사무실에 세 번씩이나 왔었는지, 그리고<남편>과<부인>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함구하고 있음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총동원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작품에서 이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평온하던 삶을 살아오던<남편>이 갑자기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거짓말 같은 문제를 겪는 것은 첫 부분에서 말하던 참다운 인간의 모습과 연결시켜야 한다.
결국<직 원>이 작성한 한 폭로성 문서로 인하여<남편>은 이제껏 자신이 살아온 평온한 삶의 허상과 표피성을 깨닫고,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고뇌하는 "한 존재의 언저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직원>은<남편>에게 "경영자이자, 작가, 배우, 관객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인간", 즉 수동적이고 단선적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하고 사색하는 능동적인 인간이 되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 다음에 나오는<남편>과 세 명의<부인>―사실은<남편>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한 명의<부인>의 多층위―과의 만남은 이를 위한 연극적 장치이다.<남편>은 부인에 대한<사랑-배신에 대한 복수-증오-더 깊은 사랑>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한 고통과 혼란에 빠져들면서 무대를 나간다. 최소한 겉으로 지켜졌던 평온함과 안락함 속에 내재하던 갖가지 부정적 문제들과 이로 인한 고뇌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는 하면서...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Xavier Villaurrutia, 1903-1950)는 멕시코 현대 연극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멕시코 현대 연극에 진정한 혁신을 가져온다. 비야우루티아 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이러니한 은밀한 미소를 유발시키는 知的인 번뜩임이다.
시인으로 활동하던 비야우루티아는 1928년에 살바도르 노보 Salvador Novo, 힐베르또 오웬 Gilberto Owen, 셀레스띠노 고로스띠사 Celestino Gorostiza와 함께 주로 창작극을 상연할 목적으로 “율리시즈 극단 Teatro Ulises”을 창설하였다. 1934년 첫 작품인<거짓말 같은 Parece mentira>로 미국의 Theatre of Orientation의 장학금을 받아 예일대학에서 연극 공부를 한다.
그의 극 경향은 크게, 관념적인 극과 개인적인 극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관념적인 극은 초창기 극에서 많이 다루어지며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선보이고 있으며, 두 번째 부류에서는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보여 지고 있다.
초창기 극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방향성이 한 작품의 서문에 나타나 있다. “... 관객은 수수께끼를 사랑 한다; ... 그 수수께끼를 놀이로 만들었을 때, 관객들에게 스핑크스가 했던 ‘맞추어보아라, 그렇지 못하면 널 죽이겠노라’라는 위협을 하였을 때, 관객들에게 그것의 유일한 정답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연극에 대한 이러한 지적인 관념이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諸문제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다. 또한 그의 초창기 극은 상징주의 적 경향을 받아들이면서, 죽음, 고뇌, 존재와 실재와 시간성에 대한 문제에 관한 탐구, 인격의 이중성 등이 작품의 문제성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1933년부터 1937년 사이에 쓰여 진 세속적인 小詩劇 Autos profanos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데, 5개의 단막극으로 된 이 작품집은 알려지지 않은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지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인상보다는 아이러니한 미소와 정제된 휴머니즘이 작품의 전반에 흐르고 있으며, 바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고 있음에 그의 연극의 위대성이 내재한다. 이 작품집으로 본격적인 극작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희곡집은 알려지지 않은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고뇌와 죽음에 관한 강박관념을 다루고 있다.
비야우루티아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Giraudeaux, Lenormand, Duhamel 등의 프랑스 작가들에 영향을 받은 관습적 사실주의(conventional theatre) 풍으로 세대간의 갈등, 중․상류층 가족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싸구려 상업극은 아니다. 작품들은 심리적 관념이 풍부하고 개인의 고뇌의 永遠不滅性을 강조하기 위해 보편적 형태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 그 외의 대표작으로「덩굴손 (La hiedra)」(1942),「본부인(本婦人) (La mujer legítima)」(1942),「엄청난 실수 (El yerro candente)」(1944), 「노총각 (El solterón)」(1945),「불쌍한 푸른 수염의 사나이 (El pobre Barba Azul)」(1946), 「실수의 비극 (La tragedia de las equivocaciones)」(1950), 그리고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940년에 쓰여 지고 7년 후에 상연된 「죽음으로의 초대 (Invitación a la muert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