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분이라면 금방 공연을 보며 서글픔과, 연민의 정, -즉, 사랑하는 사람과 어쩌다 헤어져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바라보고 극중 그 남자 혹은 그 여자들처럼 다시 손을 내밀어 타인에게, 새로운 연인에게 다가서야 하는 것이 , 것에서- 충분히 관객들과 이해하는 수로를 갖고 소통하고 있다. 사랑하던 그 사람과 헤어지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다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 하는 그 과정을 요즘 메스미디어에서는 '작업한다' 하는데....
"얼마나 그 사랑이 일시적이고, 유희적이고, 헤어짐을 전재로 하고 있으면 '작업한다'는 말을 사용하는지.........참 웃다가 펑펑 통곡할 단어이다.

여자1 과 여자2 , 남자1 , 남자 2 배우는 빈 허구의 공간 무대에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개인의 사랑하고픈 욕구와 일반적인 사람이 되어 한데 어울리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지만 언제나 또한 일반적이란 것에 대해 거부하고, 남과 다른 내 모습을 갖고 싶고, 남에게 요구하고, 질문하지만, 결코 자신은 남이 묻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자기는 보여주지 않는 일상 속에서의 현대인의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던 타임스'가 산업화의 영향 속에서 기계부속처럼 혹사당하다 결국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아픔과 소외를 담고 있다면, 제목도 무척 긴, 그러나 시처럼 아름다운 이 작품,<그리고 당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는다는 큰 두려움>은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이익추구만의 결과에서 결국 소외되고, 외로움 속에서 "당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결국/ 나 ///혼자/ 쓸쓸하고 외롭게 죽을 수 있다는 큰/// 두려움//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적나라한 모습을 다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지독한 패러독스(逆說, paradox: 배리(背理) 역리(逆理)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도 한다)와 함께 앙토냉 아르토의 '이중(double)'적 '현대인'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이곳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다가도 곧 그 말을 부정하며 '이곳은 참 어둡네요'라고 말을 한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다가'는 그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냥 나가 버린다.여자1 이 슬립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지만 또 '역설적으로'그 모습을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관객석을 향해 큰 조명기(대파)를 사용하여 똑바로 그녀의 슬립 입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보여주고 싶지만 또한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역설'과 함께,배우는 혼자만이 있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그 동안 하려다가 못했던 동작인 '담배에 불을 붙여 태우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강하지만 절대로 그 속을(본색)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현대인들,
작가인 마르셀로 베르투치오는 바로 그런 이중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그의 작품<그리고 당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는다는 큰 두려움>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결국// 나 ///혼자///쓸쓸하고 외롭게 죽을 수 있다는 큰/// 두려움//속에서 살고 있지만,끝내 내민 손을 잡아주지도, 잡지도 않는 혼자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한 인간,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본 모습이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알레한드로 카소나 '봄에는 자살금지' (1) | 2015.11.24 |
|---|---|
| 하비에르 비야우루띠야 '거짓말 같은' (1) | 2015.11.24 |
| 사무엘 베케트 '쓰러지는 모든 사람들' (1) | 2015.11.24 |
| 노르베르또 아빌라 '하킴의 이야기' (1) | 2015.11.24 |
| 스티븐 벨버 '테잎' (1) | 201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