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노르베르또 아빌라 '하킴의 이야기'

clint 2015. 11. 24. 22:12

 

 

 

 

 

 

독일에서의 전설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노르베르또 아빌라를 있게 한 이 작품은 1966년 발표되었으며 1969년에 리스본에서 늦은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희곡은 정작 포르투갈 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 아빌라 자신도 외국에서의 성공이 자국 내에서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고 말했다. 독일어 초연은 1976년 메클렌부르크의 슈베른 주립 극장에서 이루어졌고 계속해서 프랑크푸르트, 포르츠하임, 괴팅엔과 에센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1978년, 독일의 잡지 “연극 오늘(Theater Heute)”이 아빌라와 그의 작업들을 집중 조명하고 “하킴의 이야기” 독일어 번역본 전부를 수록하면서 독일 내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포르투갈 자국에서 재조명되었으며, 독일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각지에 빠르게 퍼지면서 슬로베니아, 스위스, 스페인,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한국 등지에 소개되기에 이른다.
마치 “천일야화”를 떠올리게 하는 “하킴의 이야기”는 극 중에 다시 3개의 장면이 펼쳐지는 극중극 형식으로, 1막의 부에 지친 칼리프는 그의 종인 아메드와 파티마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몰락한다. 2막의 고리대금업자이며 구두쇠인 마루프는 그의 하인인 알리와 부인 츄바이다에 의해 골탕 먹고 몰락하며, 3막의 도둑들은 악사인 오마르 1과 오마르 2, 라일라에 의해 몰락한다. 각 막의 등장인물들(칼리프, 마루프, 도둑들/아메드, 알리, 오마르 1, 2/파티마, 츄바이다, 라일라)은 서로 내용적으로 통하고 있는데, 이는 곧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여러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킴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희극의 방법, 즉 당하는 자가 괴로움을 주는 자를 농락하거나 몰락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빌라는 극을 매우 빠르게 진행시켜 비약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함으로서 동화적인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의 유려한 비유와 풍자를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러나 등장인물 간 복잡한 관계들의 변화로부터 플롯을 이끌어가는 기존 주류 희곡에 반(反)하는 것으로, 자칫 기존의 연극에 익숙한 관객들로 하여금 촘촘하게 엮인 인간관계의 결핍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혁명 전까지 그의 생애는 물론 포르투갈 전체를 끝없이 구속한, 오랜 독재정치 속에서 현실을 꼬집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작가의 의도는 정치적이고 교훈적이기 때문에, 작품의 플롯은 작가의 상상에 따라 전개되고 이야기 속 사건들이 작품의 중심이 되며 등장인물들은 다만 유희적인 도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 유희와 놀이들을 많이 닮았는데, 우회적으로 세태를 풍자하는 우희(優戱)의 기법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하다. 때문에 “하킴의 이야기”는 약 반세기 전에 쓰인 서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쉽게 다가옴과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로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희극이다.

 

 

 

 

1936년 9월 9일, 포르투갈 아조레스 군도의 테르세이라 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의 나이에 포르투갈 방송국의 라디오 드라마 부문에 응모하여 1등을 했으며, 1959년에 그의 첫 희곡 작품들 “물 위의 방랑자(O Homem que Caminhava sobre as ondas)”와 “지옥의 순례(A Descida aos Infernos)”를 썼다. 이후 그는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파리의 국립 연극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73년 리스본에서 연극 잡지 “연극 동향(Teatro em Movimento)”을 발행했다.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혁명 이후 새 정부의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지만 4년 후인 1978년, 작가의 본연에 최선을 다하고자 스스로 장관직을 사임했고, 이는 곧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는 서른 여 편에 이르는 희곡과 세 편의 소설(발행되지 않은 두 편 포함), 시집 한 권을 출판하는 데 이르렀다.
그는 또한 셰익스피어(Shakespeare)와 테네시 윌리엄스(T. Williams), 아서 밀러(A. Miller), 키노시타 준지(Junji Kinoshita) 등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희곡들 외에도 라디오 방송극, TV 방송극 등을 써 왔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을 여럿 받았다. 그의 희곡들은 현재까지도 포르투갈 최고의 극작가로 국내 유수의 프로 극단들은 물론 많은 아마추어 단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008년에 포르투갈 극작가 협회에서는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아빌라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였고, 이듬해인 2009년에 포르투갈 정부의 조폐·출판국에서는 그의 희곡 전집인 “몇몇 희곡(Algum Teatro)”의 제작을 발표하였다. 곧이어 그의 성공적인 반세기의 극작 활동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일부 발간된 그 책은 그의 대표작인 “하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스무 편의 희곡들이 시기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0년 발간 초반부터 나머지 열 편의 희곡들도 조만간 편찬될 것이라는 기대로 지금까지도 포르투갈 연극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10년 11월 당시 알가르베 지방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지역 언론의 인터뷰에서, 아빌라는 현재 그의 전집과 함께 새로운 소설의 제작에 전념 중이라고 하며, 앞으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