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앙토냉 아르토 '창공은 없다'

clint 2015. 11. 24. 09:00

 

 

 

 

4장으로 구성
제1장 - 어둠과 빛, 거리의 소음, 잡다한 목소리, 고함 등등
제2장 -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다양한 목소리. 침묵. 음악. 목소리. 흥분한 한 남자 등
제3장 - 노래 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교수대의 사람들이 시민들, 구경꾼들과 섞인다. 싸우는 소리. 비밀을 감지한 위대한 인물과 합창대 사이의 대화.
제4장 - 조명. 현자 등장.
현자는 귀머거리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공간과 중력을 제거했다고 소리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배우이며 연극이론가인 앙토냉 아르토가 제안한 실험적 연극을 위한 시도.
20세기 전위연극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아르토는 로제 비트라크, 로베르 아롱과 함께 1926년 알프레드 자리 극장을 창설하여 1929년 해체하기 전까지 4편의 작품을 상연했다. 1931, 1936년에 아르토는 잡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 Nouvelle Revue Française〉에 발표한 평론들을 통해 자신이 '잔혹극'이라 이름붙인 이론들을 체계화했으며 1938년에 이 이론들을 한데 묶어 〈연극과 그 이중성 Le Théâtre et son double〉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아르토는 문명이 인간을 병들고 억압된 존재로 만들었다고 믿었으며 또한 연극의 진정한 기능은 인간에게 이러한 억압을 제거하여 본능적인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연기자와 관객 사이에 가로놓인 무대라는 장벽을 제거하고 주문과 신음, 비명소리, 고동치는 듯한 조명효과, 지나치게 크게 만든 무대 위의 인형과 소품 등을 이용한 가공의 경관들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따라 아르토가 무대에 올린 작품은 퍼시 B. 셸리와 스탕달의 소설에 근간을 둔 〈상시가의 사람들 Les Cenci〉(1935) 단 1편이지만, 그의 견해는 A. 아다모프, 장 주네, 자크 오디베르티 등과 같은 극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장 루이 바로, 제르지 그로토프스키, 장 빌라르와 무대연극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부모는 레반트 지방 그리스인의 혈통을 일부 물려받고 있었고, 그는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가 신비주의에 끌렸던 것은 그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평생을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여러 차례 수용소를 들락거렸다. 초현실주의 경향의 시 작품인 〈성소의 중심 L'Ombilic des limbes〉(1925)·〈신경체계 Le Pèse-nerfs〉(1925)를 영향력있는 비평가인 자크 리비에르에게 보냈고 이때부터 그 둘 사이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서신왕래가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배우 수업을 마친 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경향이 짙은 오렐리앙 마리 뤼녜 포의 외브르 극장(Théâtre de l'Oeuvre)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초현실주의의 지도자였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공산주의를 옹호하자 이들과 결별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이 지닌 힘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라고 믿은 그는 또 한 사람의 이탈자인 극작가 로제르 비트라크와 합류하여 알프레드 자리 극장(Théâtre Alfred Jarry)에서 활동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벨 강스의 영화작품 〈나폴레옹 Napoléon〉(1927)에서 마라 역을 맡아 연기했고, 카를 드레예르의 고전적인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1928)에서는 수사로 열연했다. 그의 〈잔혹극 선언 Manifeste du théâtre de la cruauté〉·(1932)·〈연극과 그 분신 Le Théâtre et son double〉(1938)은 배우와 관객이 마귀를 쫓는 마술적인 의식 속에서 일체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배우의 몸짓, 효과음, 기이한 장면과 조명이 합쳐져서 말보다 더 뛰어난 언어가 생겨나며, 그 언어를 사용해서 사상과 논리를 뒤엎고 관객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천박성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작품들은 이론서만큼 중요하지는 않으며 모두 실패작이었다.

 

 

 

1935년 파리에서 공연되었는데 그당시로서는 너무나 대담한 실험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장 주네, 외젠 이오네스코, 사뮈엘 베케트 등의 '부조리극'을 비롯해 당시 연극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던 언어와 합리주의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던 모든 예술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난 쓴 〈멕시코 Mexico〉(1936)·〈사회의 자살자 반 고흐 Van Gogh, le suicidé de la société〉·(1947)·〈왕위에 오른 무정부주의자 엘리오가발 Héliogabale, ou l'anarchiste couronné〉(1934) 등이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에게서 시작 되었다. 그는 극장이라는 곳이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편지를 읽거나 화분을 치우는 한가로운 일상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 했다. 막이 오르면 열병을 앓듯이 관객을 뜨겁게 흔들고, 아아아 내 인생은 어떻게 할꼬_하고 아노미 현상으로 몰아가는 뜨거운 체험을 주어야 하는 곳이라는_ 특별한 등식의 문제제기를 한 천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