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사카구치 안고 '됴화만발'

clint 2015. 11. 23. 22:46

 

 

 

 

* 이 작품은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소설 ‘벚꽃 만발한 숲 속에서’를 주 소재로 하고 프랑켄슈타인 등의 모티브를 추가하여 쓰여졌다.

 

옛날에는 벚꽃 아래는 무서운 곳이었다. 鈴鹿(스즈카) 고개를 지나가려면 벚나무 숲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객들은 꽃나무 아래를 통과할 때면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고개에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게 된 후에 거기에 산적이 살게 되었다.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그도 역시 벚꽃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 일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어 하지만, 매년 그 상태대로 넘기곤 했다. 산적이 탈취한 8번째 여자는 통상의 다른 여자들과는 경우가 달랐다. 그 여자는 먼저 있던 일곱 명의 여자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피 묻은 칼을 휘두르기를 끝낸 후 남자는 그 정적에 커다란 공포를 느꼈다. 여자는 애달픈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가고, 공포감은 여자의 아름다움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느낌은 벚꽃 숲 아래에서 느끼는 것과 동일하다고 남자는 생각했지만 어디가 어떤 식으로 비슷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여자는 제 멋대로 굴었다. 최소한 음식만이라도 도시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빗이나 비녀를 소중하게 여겼다. 남자는 여자가 몸을 장식해 가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그는 마술사의 조수가 되었다. 자기 자신이 하나의 마술의 힘이 되고 싶다고까지 남자는 생각하게 되었다. 여자는 「그대가 정말로 강한 남자라면 도시에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남자는 도시에 갈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남자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삼일 후에 벚나무 숲이 활짝 핀 꽃으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었다. 금년에야말로 벚꽃 아래 꼼짝 않고 앉아있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가 자기도 벚나무 숲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지만 남자는 혼자서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남자는 혼자서 벚나무 숲에 가 있었다. 꽃이 피어 있는 나무 아래의 서늘함이 사방에서 밀려왔다. 그는 허공 가운데에서 울고, 기도하고, 발버둥쳤다. 그는 다만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남자는 도시에 살기 시작했다. 여자가 가리킨 집에 침입해서 사람의 목을 잘라왔다. 여자는 그 목을 가지고 놀았다. 구더기가 나오고, 살이 들러붙고, 뼈가 보여도 여자는 깔깔 웃고 있다. 스님의 목, 아름다운 딸의 목, 그 딸의 목을 위해 모은 젊은 귀공자들의 목들. 남자는 도시를 잘 알게되니,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만이 남게 되었다. 남자는 지루했고 괴로웠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지루해졌다. 그에게는 여자의 기분이 이해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 녀석들과 생활하게 되면 나라도 그 놈들을 목으로 만들어 생활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욕망은 바람을 상쾌하게 가르고 훨훨 날았다. 남자는 엉덩이가 무거운 새였다. 남자는 산 위에서 도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밤으로부터 낮, 낮으로부터 밤으로 이어지며 무한의 명암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여자가 있는 곳에 돌아오면 이 방도 저 끝없는 무한의 명암이 반복되는 하늘일 터이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했다. 여자를 죽이면 하늘의 무한의 명암이 계속 달려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게 된다. 저 여자가 나인 것일까. 하늘을 무한히 반듯하게 날아오르는 새가 나 자신이었던 것일까. 여자를 죽인다면 나를 죽여버리는 것이 될까. 남자는 며칠 동안 산을 방황했다. 그리고 산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산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새로운 목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되어 있던 여자는 도시에 있고 싶었지만 목을 가져다주는 자는 남자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남자의 향수가 채워질 때까지 산에 가 있는 것에 동의했다. 눈앞에 옛날의 산들이 있었다. 그날도 남자는 여자를 등에 짊어졌다. 오늘의 행복은 최초의 날의 행복보다 더 풍부한 것이었다. 남자는 벚나무 숲에 꽃이 활짝 핀 것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만은 숲의 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남자는 만개한 꽃 아래를 걸어 들어갔다. 여자의 손이 차가워졌고, 남자는 불안하게 됐다. 남자는 여자가 귀신임을 알아챘다. 남자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전신이 자줏빛이고 얼굴이 큰 노파였다. 그는 정신없이 귀신을 목 졸라 죽였다. 제 정신으로 돌아와 보니 목 졸라 죽인 상대는 전과 다름없는 여자였다. 그는 힘도 생각도 모두 동시에 사라졌다.

 

 

 

"그의 호흡은 멎었습니다. 그의 힘도 생각도 모두가 동시에 멈추어 버렸습니다. 여자의 시체의 위에는 이미 벚꽃잎이 몇 개인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는 여자를 흔들었습니다. 불렀습니다. 안았습니다. 소용 없었습니다. 그는 엉엉 엎드려 울었습니다. 아마 그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한 후로 이 날까지 운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의 두려움이나 불안은 사라졌다. 그는 처음으로 벚나무 숲 활짝 핀 꽃 아래에 앉았다. 언제까지라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벚나무 숲의 활짝 핀 꽃 아래의 비밀은 이제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고독"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제 남자는 고독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무한의 허공이 가득 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미지근한 어떤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가슴의 슬픔이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의 위에 있던 꽃잎을 집어보려 했다. 그렇지만 꽃잎이 있기만 할 뿐, 여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꽃잎만을 긁고 있는 듯하던 그의 손도 몸도 사라져 버렸다.
이 소설은 만발한 벚꽃과 여자의 아름다움을 소재로 한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고독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문장이 몹시 아름답고 감동적인 훌륭한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에서, 남자는 "만개한 벚나무 숲"과 "여자"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남자의 산과 여자의 도시, 그리고 남자의 "영원한 고독의 세계"와 여자에 있어서 목을 갖고 노는 유희가 정 반대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산에 돌아오던 남자는 등에 업은 여자를 귀신이라고 느끼고 목 졸라 죽인다. 그랬을까. 여자는 영원의 고독을 잊게 했던 존재이었다. 하지만 "벚꽃의 아름다움"은 그 영원의 고독에 진정으로 직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왜 여자는 귀신으로 변했을까. "영원의 고독"에 직면시키는 존재가 "벚꽃의 아름다움"이고, 그 세계로부터 남자를 멀어지게 한 것이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면, "여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은 영원의 고독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한 남자의 행위의 결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남자를 다시 한번 영원의 고독에 직면시키기 위해 여자를 귀신으로 변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영원의 고독에 마음이 끌린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여자의 존재가 소멸된 이유일 것이다

 

 

 

 

사카구치 안고 (1906년 ∼ 1955년 )은 일본의 문학가로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이다.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 현 니가타 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 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 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 <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