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리처드 오브라이언 뮤지컬 '록키호러 픽쳐쇼'

clint 2015. 11. 23. 19:37

 

 

 

 

이 뮤지컬의 장르가 컬트이다.

한 쌍의 연인이 외딴 성에서 겪는 기괴하고 황당무계한 일을 그린 컬트 연극이다.
컬트하면 에로틱하고 sf 환타지 모든 형식과 선입견을 뒤집는 기상천외한 스타일이

주된 의도라고할까? 그런 의도가 메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다.

 

 

 

 

 

교회에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자넷은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 브래드의 구애를 받고

약혼한 다음, 그들의 사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은사인 스코트 박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도중에 거대한 폭우를 만나고 타이어가 망가지면서 비를 피해 전화를 걸러 들른 곳이

하필이면 겉보기에도 수상해 보이는 트랜실바니아 성이었다. 자넷과 브래드는 거기서

트랜실바니아 은하계 트랜스섹슈얼 행성의 외계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성의 주인

프랭크 N 퍼터 박사의 하인 리프래프, 마젠타 등과 함께 외계인들의 파티에 참여하게 된다.

파티의 기괴하고 혼돈스러운,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에 두 사람은 빠져들어가는데,

이때 프랭크 박사가 나타나고 자신의 창조물인 인조인간 록키 호러를 공개한다.

양성애자 외계인인 프랭크 박사는 그날밤 자넷과 브래드를 번갈아 유혹하고,

그들과 각기 잠자리를 가진다. 브래드는 혼란스러워하고, 성을 알게 된 자넷은 록키와

사랑에 빠진다. 자넷과 브래드 뿐만 아니라 모두 온통 난잡스런 분위기에 깊이 젖어드는데,

이때 난데없이 스코트 박사가 등장하여 프랭크에 맞선다.

 

 

 

 

1973년 영국 런던에 자리한 60석 규모의 소극장 로열 코트 극장. 이곳에 기상천외한 뮤지컬 한 편이 올라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제 막 약혼한 순진한 커플 브래드와 자넷. 여행길에 폭풍우를 만나 근처의 성으로 피신한 이들은 이상야릇한 차림새의 외계인 과학자 프랭크 N 퍼터와 그의 피조물 록키를 만난다.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1930~70년대 SF 호러 영화, 글램 록, 금기시된 성적 판타지를 혼합한 이 해괴한 뮤지컬의 제목은 <록키호러쇼>. 코믹한 B급 감성과 기존 성 담론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마니아층을 양산한 <록키호러쇼>는 규모를 키워 공연을 이어 나갔고, 마침내 ‘20세기 폭스’가 영화화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바로 컬트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다. ‘컬트(Cult)’란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컬트 영화라 하면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지닌 영화를 뜻한다. 비주류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지금의 신화적 위치에 올려놓은 것 역시 다름 아닌 팬들이었다. 원작자 리처드 오브라이언과 오리지널 캐스트 팀 커리, 패트리샤 퀸, 리틀 넬이 그대로 출연한 영화는 1975년 개봉 당시만 해도 흥행에 참패했다. 대중성이나 건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실패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비쳤다. 그러나 영화는 1976년 심야 상영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뉴욕 웨이벌리 극장에서 시작된 주말 심야상영은 2년 뒤 50여 개 극장, 3년 뒤 230여 개 극장으로 확산되었다.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놀라웠다. 관객들이 가만히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대신 영화 속 장면을 흉내내고 대사를 맞받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교사였던 루이즈 파레즈 주니어는 <록키 호러 픽쳐 쇼> 심야상영을 보러 왔다가 비를 맞으며 종종거리는 영화 속 자넷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사란 말이야, 이년아!”하고 소리쳤다. 그의 말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자,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대사와 대사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프랭크가 “기대감(Antici……pation)”을 뜸들이며 말할 때 “말해!”라고 소리치고, 내레이터가 훈계를 늘어놓을 때 야유를 퍼붓는 식으로. 다음주가 되어도 지난주에 소리쳤던 대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관객들이 이를 반복했고, 새로운 장면에 새로운 대사를 덧붙이면서 영화 밖의 대본이 만들어졌다. 후에 ‘콜 백(Call Back)’, ‘대위법적인 대화’ 등으로 명명된 이 독특한 말걸기는 곧 웨이벌리 극장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록키 호러 픽쳐 쇼>가 빚어낸 놀라운 컬트 현상은 극장을 벗어나 사회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영화와 추종자들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극장 바깥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그러나 관심의 크기만큼 반감도 컸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입구를 봉쇄하는 인파에 불만을 표했고, 극장 주위에 몰려든 불량배들은 남다른 옷차림의 관객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반복된 소요로 영화는 결국 1978년 1월 극장에서 내려갔지만 팬클럽의 노력으로 같은 해 6월 8번가 극장에서 재개봉되었다. 자경단까지 꾸리며 자신들의 영화를 지키려 한 팬들의 열정 덕분에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마침내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 심야 극장의 인기 상영작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상영되며, 영화사상 가장 오랜 기간 상영 중인 영화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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