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쿠바 해안에 사는 한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서 엄청나게 큰 뭔가(고래라고도 하고 청새치라고도 하고 소설 말미에는 상어가 아닌가하는 의문도 던지지만 어떤 물고기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를 발견하고 사흘간의 힘겨운 사투 끝에 겨우 잡아서 집으로 향했으나 상어 떼의 습격으로 집에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고래는 머리와 뼈만 남은 채였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설의 표현과 깊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노인의 사투를 직설적이고 실감나게 표현해 숨 막힐 것 같은 역동성을 표현해 낸다. 그리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모습을 노인 산티아고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신념과 희망을 간직한 인간의 의지는 너무나 강했다.

노인 산티아고는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다. 고기 한 마리 제대로 낚지 못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포기를 모르는, 눈빛만은 살아있는 굳은 의지의 인간이다. 그의 유일한 벗은 어린 소년 마놀린이다. 판잣집에서 외로이 사는 노인에게 소년은 친구, 가족이나 다름없다. 소년 마놀린은 노인의 곁에서 야구이야기로 말동무가 되어주고 노인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누구보다 많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노인은 항상 사자 꿈을 꾼다. 소년처럼 꿈에 그리는 동경하는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노인의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인간의 삶을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힘겹게 싸워서 이겨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하고 외로운 현실에서 인간들은 사는 내내 무엇인가를 꿈꾸며,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니까. 사회라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희망 때문이니까. 노인은 견디기 힘든 상처에도 강인한 정신으로 버텨낸다. 그러나 이 모습은 강해보인다기보다 몹시 애처로워 보인다. 노인은 버티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버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인에게 진심을 다해 도와주는 이는 오직 소년뿐이었고 노인의 삶과 마찬가지인 바다에선 노인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바다에게 한평생을 바쳤지만 바다는 노인에게 가혹한 상처만을 안겨줬다. 노인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소년이 곁에 없음을 아쉬워한다. 소년이 있었다면 노인의 말을 들어 줬을 텐데. 노인은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계속 혼잣말을 하는 모습은 너무 익숙해 보여 너무 처량해 보인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노인도 끝없이 이어지는 사투로 지쳐간다. 그러나 노인이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결말을 알아서가 아니다. 노인에게 이 고난을 이겨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바다는 시련마저 너무 빨리 안겨준다. 힘겹게 싸워서 획득한 대가도 냉혹한 바다는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어 떼는 노인의 전부를 앗아가려 한다. 하지만 노인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노인은 또다시 희망을 꿈꾼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희망을 예고한다. 노인이 잡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보고 감탄한 사람들은 노인들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노인의 굳은 신념은 소년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자의 꿈은 노인의 바다, 노인의 삶 그 자체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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