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서문
우리가 연극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려고 할 때, 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반드시 원칙을 고수하는 확고부동한 인간이 아니라, 고통 받으며 행동하는 인간, 자기의 길을 찾아가거나 잃어버리는 인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극중 인물의 행동방식을 수학적인 중명이 가능하도록 도식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법칙에 의거하도록 즉 그들이 스스로 행동하며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하고, 그러한 일에 우리가 간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중의 어떤 인물은 무조건 선하고, 또 어떤 인물은 무조건 악하다는 식의 공식은 성립될 수 가 없다. 물론 독단론자들은 그러한 방식을 계속 고집하겠지만 그들은 결코 진정한 연극작품을 창조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오더브루흐의 극중 행동방식에 대해 누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나로선 하등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선을 추구하는 한 인간이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저주받을 살인행위를, 그것도 동료를 살인하는 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옥에는 원래 천사가 존재할 수 없는 법인데, 이 작품의 제목이 암시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가 바로 지상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나는 1942년에 작성된 이 작품의 초안에다가 이 작품을 이름 없는 익명의 투사들에게 바친다고 적어 놓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독일 형무소에서 히틀러의 손에 죽어간 나의 친구들 테오도르 하우바하, 빌헬름 로이쉬너, 헬무트 폰 몰트케에게 이 작품을 바치련다.
- 1945년 7월 버몬트 주 바나드에서 칼 추크마이어

줄거리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적인 희곡 구조를 따르고 있다. 시간은 1941년 늦가을, 장소는 베를린의 한 음식점, 하라스 장군의 개인아파트, 군용비행장의 설계실로 제한되어 있다. 1막은 베를린의 한 고급음식점에서 시작된다. 공군대장 하라스는 친구인 아일러스 대령의 50회 출격을 축하하는 심야 연회를 베푼다. 새로 제조되는 전투기에서 계속적으로 결함이 드러나자 책임감독을 지고 있는 하라스는 해명에 부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아일러스 대령이 이 전투기를 조종하다가 추락하는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아일러스 대령의 미망인 안네가 하라스를 추궁하며 사고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전투기의 결함으로 인해 친구까지 잃게 된 하라스는 이 문제의 진상을 추적해나가다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나치정권을 향한 저항운동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전투기의 결함은 이 저항운동의 방해공작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 연루된 친구 오더부르흐는 “히틀러가 승리할 수 있는 무기들을 파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오더부르흐와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라스는 자신이 혼자 모든 책임을 진다. 아일러스가 조종한 전투기와 같은 전투기를 탄 하라스는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하여 사망한다. 이는 아일리스를 향한 하라스의 속죄에서 비롯된 행동이지만, 나치정권은 이를 국가 선전의 도구로 이용한다.

작가와 작품해설
칼 추크마이어(Carl Zuckmayer)의 3막 극 '악마의 장군; (Des Teufels General)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연극무대에 등장하여 흥행기록 면에서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다. 1947/48년도와 1948/49년도에 연속적으로 독일 국내 공연기록 랭킹 1위를 차지하였던 이 작품은 1948/49년도 한 해 동안의 기록만 무려 2,069회에 달하였으며,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 동안에 걸쳐 통산 5,000여 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1955년에 헬무트 코이트너(Helmut Kautner)에 의하여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 각국에 널리 소개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 추크마이어는 1896년, 독일 라인 강변의 소도시 나켄하임 (Nacken- heim)에서 태어났는데, 1920년 베를린으로 진출하여 표현주의적 경향의 드라마 '십자가의 길' (Kreuzweg)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데뷔작인 이 '십자가의 길'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표현주의 적인 경향으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하여,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로의 방향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태어난 라인지방 포도원의 주민의 생활상을, 신즉물주의적 방식에 입각하여 신선하고 명쾌한 수법으로 그린 희극 '즐거운 포도원' (Der frOhliche Weinberg)을 1925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에서 발표하여 절찬을 받음으로써 그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극작가로서의 성공을 맛보았다. 그는 네스트로이(Johann Nepomuk Nestroy)와 라이문트(Ferdinand Raimund) 이후 최고의 민중극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즐거운 포도원」으로 클라이스트賞(Kleist-Preis)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그 후 1927년과 1929년에 각각 '쉰더한네스' (Schinder-hannes)와 '카타리나 크니' (Katharina Knie)를 발표하여 또 다시 성공을 거두었다. 뒤이어 1931년에 독일제국의 군국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한 시대 극 '쾨페닠 대위' (Der Hauptmann von Kdpenick)를 발표하여 더욱 크게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독일 신즉물주의 극문학에 있어서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쌍벽을 이루는 민중극 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미 1920년대에 대단한 문화적 성공을 거두었던 그가 나치시대의 오랜 공백 기간을 거치고 난 뒤, 2차 대전 후의 독일 극계에 '악마의 장군'이란 3막의 대작을 가지고 또 다시 혜성처럼 나타나 전후의 독일극단을 완전히 석권하다시피 함으로써 독일 극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드문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수립되자 그는 곧바로 자신의 활동 무대였던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근교로 거처를 옮겨 은거하다가, 1938년에 나치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하자 또 다시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몬트 주 바나드(Barnard)의 외딴 농장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악마의 장군」은 바로 이때 쐬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평소 나치정권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그에게 국외로 망명할 것을 권유하던 그의 친구 에른스트 우데트(Ernst Udet, 1896~1941) 장군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문보도를 통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우데트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던 전설적인 독일공군의 영웅이었는데, 1938년에 공군병참 감(Generalluftzeugmeister)에 임명되어 전투기의 제조보급 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소전 개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양상이 전면전으로 바뀌면서부터 한계를 드러낸 독일 공군력에 불만을 품고 있던 히틀러가 공군전투기의 성능과 생산능력을 문제 삼아 그에게 책임추궁을 가하자, 1941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 후 항간에서는 그의 죽움이 나치에 의한 타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추크마이어가 미국에서 접한 신문의 공식 보도내용은 그가 새로 개발된 전투기의 성능을 점검하던 중 불의의 추락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장례가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는 단 몇 마디뿐 이었다고 한다. 추크마이어는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42년 어느 늦은 가올 홀로 들길을 걷다가, 그의 죽음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에게 거꾸로 역이용 당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국장(Staatsbegrabnis)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 불현듯 문학적인 영감을 얻어 이 '악마의 장군' 올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평소부터 히틀러의 나치정권에 대하여 반감을 품고 반 나치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게슈타포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오던 공군대장 하라스가 자신의 지휘감독 책임과 직결되어 있는 연쇄적인 전투기 추락사고의 원인을 파헤쳐가다가, 이 사건이 바로 그가 가장 신임했던 부하 기술자가 저지른 조직적 반-나치 저항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의 길을 택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치의 탄압을 피하여 멀리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던 망명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의 독일 국내 상황을 마치 르포 르타쥬처럼 매우 생생하고 치밀하게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기 직전, 즉 동부전선에서 독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1941년 가을로 돼있으며, 장소는 당시 나치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이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치공군 장교, 군수품 조달책임을 맡은 실업가, 외교관, 게슈타포 비밀요원, 히틀러 유겐트 단원, 화가, 오페라 가수, 기자, 경관, 노동자 등, 말 그대로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전통극과 현대극, 표현주의극과 신즉물주의극의 기법이 혼합 절충된 매우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막은 신즉물주의적인 경향을 띤 현대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신즉물주의가 규범으로 삼고 있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자연주의적 묘사기법을 동원하여 광신적인 열성분자, 맹목적인 추종자, 교활한 기회주의자, 무기력한 소시민이 펼쳐 보이는 나치 시대의 어둡고 추악한 현실을 표준어, 사투리, 속어, 외래어, 은어, 비어 등 다양한 일상어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또한 이 작품은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평면적 사실묘사에 그치지 않고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민중극의 기법을 함께 곁들이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멜랑코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통속적 센티멘탈리즘과, 다양한 수사학을 동원한 재치 있는 말장난, 익살스러운 노래와 춤 등의 해학적 요소를 가미하여 자연주의의 형식 논리적 경직성을 벗어난, 다정다감한 연극의 재미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재2막에서는 극 중간에 잠시 개방 극(Offenes Theater)의 형식이 나타나다가 후반 이후부터는 표현주의적인 색채를 띤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묘사수법이 주조를 이루기 시작한다. 베르펠(Franz Werfel)과 트라클(Georg Trakl)의 서정시를 연상케 하는 문장이 등장인물의 대화에 삽입되는가 하면, 어둠을 밝히는 대공탐조등의 불빛을 神의 거대한 손으로 묘사하는 둥 다분히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묘사수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제3막에서는 지옥을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무대조명장치 아래서 나치와 관련된 죄악의 문제를 둘러싸고 도현적 격정(Pathos)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의 격앙된 대사가 마치 실러(Friedrich Schiller) 의 관념비극을 대하는 듯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의 전체적 구성은 전 3막으로 짜여 있으며,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역할을 중심으로 플롯이 전개되는 전통적인 폐쇄극(geschlossene Dramenform) 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스토리 전개의 배후에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갈등의 지속적인 서스펜스를 통하여 시종일관 추리 극을 읽는 듯한 긴장감올 조성함으로써 무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건 속으로 관객을 완전히 동화시켜버리는 이른바 극적 동화 효과를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운명은 흥행을 통해 거둔 성공만큼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복잡하게 얽힌 나치시대의 정치적인 갈등현상을 주인공의 역할을 중심으로 구태의연한 전통극의 수법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이 나치즘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하기보다, 오히려 탈 나치화(Entnazifizierung)에 역작용을 일으키는 시대착오적인 작품이라는 비난이 사회주의진영의 비평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드라마에서 오로지 주인공의 인간적인 매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 작품에 함축되어 있는 나치즘에 대한 비판적 요소를 그대로 간과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야유와 박수가 동시에 빗발치는 가운데 급기야 1963년에는 이 작품의 무대공연을 작가 스스로 중단시키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고 그 후 작품의 내용에 대한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일대 파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치 시대의 한 망명 작가가 외로운 망명지에서 혼신의 정열을 다 바쳐 만들어낸 이 작품은 나치 시대가 비극적인 종말을 고한 뒤에 이 세상에 나타나 바로 자신이 다루고 있는 나치즘의 문제 때문에 유례없는 인기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했던 영원한 문제작으로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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