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피에르 코르네유 '오라스'

clint 2015. 11. 22. 13:27

 

 

 

 

 

 

작품해설

5막으로 구성된 운문비극. 1640년에 초연되었으며,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헌정되었다. 『르시드』의 성공 이후 수많은 비판들이 제기되자, 코르네유는 비극 장르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본격 비극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 그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史』에 나오는 호라티우스와 쿠리아티우스 집안의 전투를 소재로 채택한다. 그리고 오라스의 아내 사빈이라는 가상인물을 추가함으로써 코르네유는 두 가문의 전투를 친족살해라는 비극적 상황으로 바꾸어놓았다. 처남과 누이를 죽이고 국가를 지키려 한 오라스의 비극은 로마의 건국신화와 연결되는데,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 역시 형제인 레무스를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코르네유는 형제살해라는 모티프를 통해 이 사건을 제2의 건국신화에 해당하는 위상으로 격상시켰다. 코르네유의 작품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인간적인 감정과 국가에 대한 의무와 명예라는 공적인 가치들이 극적으로 충돌한다. 작품의 결말은 국가라는 상위의 가치를 위해 인간적인 요소의 희생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 작품이 절대왕정을 추진한 추기경 리슐리외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이러한 영웅적 국가주의에 항변하는 카미유의 목소리를 복권시키려는 해석들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형제 살해 행위가 등장하는 이 극 속의 전쟁 양상은 당시 루이 13세 치하의 국제 정세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 그 사이에서 스페인 공주이자 프랑스 왕비인 안도트리슈가 처한 입장 같은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보는 학자도 있다. 또한 루이 13세 시대와의 관련성을 유추하게 하는 부분은 끝에 나오는 오라스에 대한 평결 부분을 보면, 많은 신하 중에서 오라스라는 특정 인물이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재상 리슐리외가 전권을 가진 시대 상황과의 관련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민심이 반드시 하늘의 뜻인 것은 아니라든가 신하의 생명은 전적으로 주군의 것이라는 등의 대사에서 군주에 대한 극단적인 신뢰나 충성심이 드러나는데, 이 또한 루이 13세에 대한 충성이 오히려 리슐리외의 권력 기반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도 해석된다.

혈족을 죽이는 비극이 교훈적일 수는 없겠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다시 말해서 남편이 아내를 죽이거나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거나 오빠가 누이를 죽이는 경우, 사건은 비극이라는 장르에 더 잘 맞는 소재가 된다. 관객들에게서 더 큰 비감을 자아내게 되니까. 그리스 비극들이 그랬고, 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오라스〉에서 우리는 애국심, 충성심, 용맹스러움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프랑스가 요구하는 덕목이다. 이것은 또한 비극의 유용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 피 비극 작가는 직설적으로 교훈을 주지 않는다. 단지 극적인 줄거리 속에 그것을 섞어놓고 관객이 찾아내도록 한다.

 

 

 

줄거리

 

로마는 인접국 알바롱 가와 2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알바롱 가 출신으로 오라스에게 시집온 사빈과, 사빈의 오빠 퀴리아스와 결혼하기로 한 오라스의 여동생 카미유는 이러한 사태를 한탄한다. 퀴리아스가 등장하여 두 국가 간에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졌음을 알린다. 양국에서 각각 세 명씩 전사들을 뽑고 그들의 승부에 따라 전승국과 패전국을 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양국의 대표전사들로 오라스 형제들과 퀴리아스의 형제들이 뽑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카미유는 퀴리아스에게 결투를 포기하라고 간청하고 사빈은 자신의 처지를 탄식한다. 하지만 오라스의 아버지는 아들과 퀴리아스를 불러 그들에게 각자의 의무를 다하라고 촉구한다.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 양측 진영의 군사들은 다른 전사들로 바꿔 주기를 원하지만 이에 대한 신탁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윽고 첫 번째 전투 소식이 들려온다. 오라스의 두 형제가 죽었고 오라스 자신은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오라스의 아버지는 불명예스러운 자신의 아들을 처형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이는 속임수였다. 오라스는 부상당한 퀴리아스 형제들을 지치게 하여 차례차례 처치한다. 오라스가 돌아오자 카미유는 오빠의 개선을 축하하기보다는 퀴리아스의 죽음을 슬퍼한다. 오라스가 로마의 적에 대한 추모를 금기시하지만, 카미유는 오빠의 야만적 행동을 비난하고 로마를 저주한다. 이에 오라스는 그녀를 죽인다. 카미유를 연모하던 로마 청년 발레르의 고발로 오라스는 재판을 받게 된다. 오라스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왕은 그의 용기가 법을 넘어선다며 오라스를 사면한다.

 

 

 

피에르 코르네유 1606~1684.

사법관 출신의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정의 육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카트린 유와의 감상적인 연애를 바탕으로 쓴 <멜리트> 상연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가 무명의 작가에서 일약 문단의 총아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르 시드>를 공연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극이 공연되는 동안 마레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그야말로 충격과 흥분에 휩싸였고 엄격한 비평가들은 형식적 규제를 따르지 않는 그의 작품에 냉혹한 공격을 퍼부으며 그 유명한 ‘르 시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르 시드>의 성공보다 일부의 비난에 더 민감했던 그는 한동안 작품을 써내지 못하다가 <오라스>를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재개한다. 이후 <쉬레나>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