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빈원 병동의 나란히 놓인 두 침대에서 마이크와 마이클은 눈을 뜨자마자
과거의 일(누가 누구의 토끼를 훔쳤는지, 장어를 훔쳤는지 등)을 들추며 격렬한 설전을
벌인다. 그러던 중 마이크의 누이인 도노후 부인이 병동을 찾아온다.
그녀는 최근 남편이 세상을 떠나 집이 쓸쓸해졌으며, 가문의 수치를 씻고 농사일을 도울
남자 손이 필요하다는 실리적인 이유로 오빠 마이크를 구빈원에서 데려가 집과 음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다. 입고갈 멋진 양복도 선물로 가져왔다.
구빈원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마이크는 홀로 남겨질 앙숙 마이클이 마음에 걸려
"내 친구 마이클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도노후 부인은 말썽꾸러기 노인을 둘이나 책임질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결국 마이크는 오랜 싸움 동반자인 마이클을 두고 떠나기를 거부하고,
화가 난 도노후 부인은 홀로 떠나간다. 양복도 함께, 그리곤 이 옷에 맞는 남자를 찾는게
낫겠다고 한마디 던지고...
누이가 나가자마자 두 노인은 다시 서로에게 베개, 머그잔, 기도서 등을 집어던지며
이전과 다름없는 치열한 말다툼으로 돌아간다. 이게 그들에겐 행복인 거 같다.

레이디 그레고리(Lady Gregory)의 <구빈원 병동>(The Workhouse Ward, 1908)은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을 이끈 문예 극장 애비 극장(현재는 아일랜드 국립극장임)의
창립자이자 극작가인 레이디 그레고리가 집필한 단막 희극이다.
이 작품은 가난과 고립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두 노인의 끊임없는
말다툼을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을 유머러스하고 날카롭게 그려낸다.

"외로운 것보다 싸우는 게 낫다"는 주제로 작가는 이 작품을 아일랜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우화라고 설명했다. 두 노인에게 서로를 향한 독설과 다툼은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소통방식이자 생명력의
원천이다. 작품에 나타난 아일랜드 대기근과 영국의 구빈법으로 인해 생겨난 절망적인
공간인 '구빈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를 어둡게 그리기보다 인간의 복잡한 연대감과
자존심을 위트 있는 대사로 풀어낸다. 레이디 그레고리는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두 인물 간의 핑퐁 같은 언어적 말싸움을 극대화하여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적 면모를
보여준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낀데로 형제 '햇빛 밝은 아침' (1) | 2026.07.11 |
|---|---|
| 주세페 지아코사 '영혼의 권리' (1) | 2026.07.10 |
| 단 고팔 무케르지 '인드라의 심판' (1) | 2026.07.10 |
| 세인트 존 행킨 '지조 있는 연인' (1) | 2026.07.09 |
| 귄터 루텐보른 '요나의 표적' (1) | 2026.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