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귄터 루텐보른 '요나의 표적'

clint 2026. 7. 9. 08:27

 

 

극단 가교가 1967년 10월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했다. 거의 60년 전이다

이재진 번역 이승규 연출.

 

세계 1, 2차 대전에 참가했던 군인들과 戰爭으로 인해 피해받은 몇 명의 민간인들이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다준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재판을 벌인다. 
그러나 여기에선 구약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죄없이 불아궁이에 던져 졌던 젊고 
씩씩한 세 청년"에 관한 사건을 모델로 유사이래 인간에 의해 자행된 모든 범죄의 원흉이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우화적 방법을 쓴다.
신을 대변하는 재판장은 전쟁시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했고 세 천사장으로 나오는 
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은 본의는 아니나 나치군대 병사였고, 보통 남자, 여자, 상인은 
戰爭으로 인해 피해 모든 평범한 사람을 대표하여 증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잠수함 속에서의 뜨거운 체험을 통해 살아나온 요나(함장)은 모든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요나는 구약에 나오는  요나가 니느웨 성에서 그러했듯이 
현재의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최초의 화살은 직접 범죄의 실행자였던 보통사람에게 겨눠진다. 증인들은 보통사람이 
무고한 사람을 잡는 것을 봤고 전쟁터로 끌고가는 것을, 처형하는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변명한다. 세계의 도처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범죄가 어떻게 자기 

한 사람으로 가능하겠냐고. 다시 재판정은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는다. 보통여자가 지목을 받는다. 그녀는 변명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결국 보통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책임은 

여왕에게 돌아간다. 여왕은 자기가 戰爭을 일으켰고 사람들을 고문했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여왕도 할 말은 있다. 고문하고 형벌을 가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을 

다스리기 위해 불가피했고, 그런 인간을 창조한 者야말로 罪人이라고. 그리고 모든 

帝王이 저지른 범죄를 시인한다고 하여도 어떻게 한 인간이 그 모든 범죄의 責任 질

수 있느냐고, 그래서 재판장과 요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악한 인간을 창조한 신을 

유죄로 선고한다. 이것이 20세기 인간들의 모습이며 그들의 결론이다. 

이 판결을 神에게 재판장, 천사장이 전하러 나간 뒤에 이번에는 구원받은 "니느웨 "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온 니느웨가 타락하려 신의 재앙이 암박했을 때 

왕이 反省하고 회개하여 신의 진노를 피했던 것이다.

 

 

 

재판소로서의 극장. 이 연극은 의도적으로 '제4의 벽'을 허물고 서사극의 요소를

활용한다. 배경은 시대를 초월한 법정의 기능을 하는 탈 나치화 재판소이다.

특정 시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줄거리는 시대를 넘나들며 성경시대의 참상과

20세기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연결한다. 잠수함 함장, 베를린 시민, 생존자 등

역사적 및 현대적 인물들을 포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최근 과거의 만행에 대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는 대신,

상황을 역전시킨다. 그들은 재판장, 즉 신을 상징하는 '그'를 궁극적인 책임자로

지목한다. 신神적인 심판자는 바빌론의 멸망부터 성경 속 불타는 용광로,

바르샤바의 파괴, 뷔르츠부르크 폭격,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적 재앙과 대량학살의 책임자로 몰린다. 인류는 하나님 자신이

허용한 고통에 대해 속죄해달라고 요구한다.

이 연극의 극적 핵심은 심판의 수용에 있다. 신성한 심판자는 아무런 이의 없이

인류의 판결을 받아들인다. 이 연극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기독교적 깨달음이다.

 

성경내용을 그린 상상화

 

 

이와 병행하여, 예언자 요나의 성경이야기가 반영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니느웨로 도망친 요나는 여기에서 잠수함의 함장이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있었던 시간은 "피와 눈물"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잠수함의 강철 선체에 갇힌 것과 동일시된다. 요나는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를 거부하는 인류의 상징이 된다. 

이 작품은 전후 독일 사회에 죄책감을 (하나님이나 정치에) 전가하지 말고

진정한 내적 회개을 촉구한다. 하나님은 왜 고통을 허용하는가?

작가 귄터 루텐보른은 이 질문에 철학적인 답변이 아닌 실존적이고 신학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고통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와 함께 적극적으로 고통받으신다는 것이다.

 

 

 

<요나의 표적<(The Sign of Jonah)은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극작가인 귄터 루텐보른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집필한 9장 구성의 전후 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와 나치의 만행에 직면했던 인류의 고통과 비극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다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의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의 책임을 묻기 위해 하나님(신)을 법정에 세우는 파격적인 
설정을 한다. 천사들과 고대 바빌론의 여왕이 증인으로 소환되며, 결국 신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총 9개의 장(Scene)으로 구성된 연극 대본 형태이다.
제3제국(나치)의 유산에 대한 영적 고찰,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탐구, 죄책감과 연대 책임, 
그리고 심판과 구원이라는 성경적 주제를 결합하고 있다.
성경적 모티브의 차용인 제목 '요나의 표적'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언급한 구절에서 따왔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보낸 후 살아 돌아와 
니느웨 백성을 회개시켰듯,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 역시 철저한 회개와 
영적 갱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작가 귄터 루텐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