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용을 '동치미'

clint 2015. 11. 14. 10:13

 

 

 

줄거리
직업상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퇴직 공무원인 김 선생, 이런 그를 아무런 불평 없이 10년간이나 간호하며 뒷바라지 한 부인 정 여사. 기업가 집안으로 시집을 간 큰 딸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혼 당시의 혼수문제로 여전히 부모와는 섭섭함과 원망, 죄스러움으로 불편한 관계이다. 여기다 아들은 집을 담보로 사업을 벌여봤지만 지금은 실패해 기러기 아빠가 된 신세. 늦깎이로 낳은 작은 딸 역시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배우의 꿈을 쫓아 대학로를 배회하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하는 김 선생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던 정 여사는 힘에 부쳐 갑작스레 그 자리에 쓰러지면서 담당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게 되는데...

 

 

 

작가의 말
2004년 10월 어느 날. `아내 따라 6일 만에 세상을 버린 어느 시인의 비가`라는 기사를 접하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원로 시조 시인 감상옥 님이 60여 년간 해로했던 부인을 갑작스레 잃자 식음을 전폐하며 지내다가 엿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었습니다. 노 시인은 부부의 깊고 애뜻한 정을 시 작품 속에 담아 세상에 남기고는 그렇게 홀연히 떠났던 것입니다.
연극 동치미 (원제:내 생 마지막 비가)는 위의 사연을 모티브로 하여 부부애와 자식사랑_곰삭은 부정(父情)과 눌러 담은 부정(夫情)_등을 진정성이 기초되는 따스한 인간애로 표현해 낸 작품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모두가 힘든 이즈음. 가족과 가족애, 효과 부부애, 동기간의 정 등을 질펀하게 담아 이 땅의 모든 분들께 훈훈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노인들이 독립심을 키워야 하는 시대다. 자식들에게 의존하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 아들, 딸들이 못되고 모질어서가 아니다. 이제 그들도 자기네 살기 바쁘다. "살아있을 때 자식들에게 먼저 재산을 나눠주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짓이 없다"는 노인들끼리의 웃지못할 대화 내용도 흔히 들린다. 죽는 순간까지 자기 먹을 것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웃나라의 얘기라고만 알았던 황혼이혼도 어느덧 우리 사회의 용어가 되어버렸다. 실직 또는 은퇴한 후 가정 내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힘을 잃은 채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 중ㆍ장년 남편들의 모습이다. 처량한 남편의 이미지를 희화화한 온갖 우스개 말과 이미지들이 난무한다.

 연극 '동치미'는 시대를 거꾸로 간다. 아버지는 다 큰 못난 자식을 꾸짖으면서도 없는 살림을 내 어떻게 해서든 뒷바라지를 하려 한다. 남편은 퇴직했지만 여전히 집안의 중심이다. 아내를 지청구하면서도 남몰래 끔찍이 사랑한다. 그 사랑을 알기라도 하듯 아내는 늘 그의 그림자처럼 옆에 어른거리며 극진히 모신다. 어느날 아내는 남편에게 숨겨 온 자신의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아내의 고통에 무심했다는 죄책감에 남편은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는 곧이어 아내의 길을 따른다. 김용을 작가 겸 연출이 쓴 이 작품은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의 별세 기사가 모티브가 됐다. 고 김상옥 시인은 만년의 어느날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그는 병든 자신을 정성껏 돌봐주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 엿새만인 2004년 10월31일 아내의 길을 따라갔다. 이들 노부부의 해로와 지극한 사랑을 다룬 연합뉴스 정천기 기자의 <아내 따라 6일만에 세상 버린 어느 시인의 비가(悲歌)> 기사는 김용을 작가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와 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결합해서 쓴 픽션이 '동치미'다.

 

극중 주인공 김만복은 직업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퇴직한 공무원이다. 부인 정 여사는 아무런 불평없이 10년 넘게 그를 보살피고 있다. 큰딸은 부유한 사업가 집안으로 시집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혼 당시의 혼수문제로 인한 갈등의 앙금이 남아있다. 아들은 사업가. 김만복은 집까지 담보로 해 아들의 사업자금을 대 줬지만 결과는 사업실패. 아들은 기러기아빠 신세다. 작은 딸 역시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연극판을 쫓아다니며 경제적으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때로는 치욕을 감수하며 자식 편에 선다. 연극은 은퇴한 가장을 중심으로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내, 그리고 그들과 1남2녀의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에서의 갈등, 화해와 가족애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구닥다리 얘기같지만 연극에는 감동이 있다. 극은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생겼던 일들을 무대에서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을 그려내는 플래시백(flashback) 형식으로 풀어낸다. 내 부모가 살아온 삶, 또 부모 앞에서는 항상 죄인일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살아온 삶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의 소재지만 연출력에 의해 관객의 감정이입과 동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한 평범한 가정의 생활 속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일을 다룬 만큼 웃음도 있고 아픔도 있다. 연극 제목 '동치미'는 스마일, 김치, 치즈와 같이 사진 찍기 전에 미소를 만들기 위해 외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