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장소는 재활용품들이 쌓여있는 아파트의 지하실이다.
신문 꾸러미를 무대로, 폐가전제품을 무대장치로 삼아 평화씨를 비롯한 5명의 주부들
(평화씨, 원복씨, 덕순씨, 경수씨, 현아씨)이「류시스트라테」라는 연극을 연습한다.
이 연극 연습을 하는데 사실 특별한 극적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하실의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찾아온 아파트 경비원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극중 상황(「류시스트라테」)이 연극 연습(극중 극)인 줄도 미처 모를 만큼
극중 극 속에 몰입해 있다. 뒤이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경찰과 남편들도
극의 골격을 깰 만한 어떤 사건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현대의 아파트 주부들의 이야기를 부차적 줄거리로 바탕에 깔고
그 위에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된 줄거리로 삼아 전개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연극의 주제나 연극적 구성은「류시스트라테」에 거의 의존하고, 이를
우리 시대의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는 부분에서 다소의 창의성이 발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류시스트라테 Lysistrata」(B. C. 411)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인데, 번안극으로 볼 수 있다.
평화씨 !」의 기둥 줄거리는 거의 원안(「류시스트라테」)과 흡사하다. 그것은 극중 극의 형식을 통해 그 모습을 나타낸다. 즉, 몇 명의 주부들이 아파트의 지하실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연극(극중 극)이 바로「류시스트라테」이다. 물론 연극 연습의 와중에 아파트 경비원, 경찰, 남편들이 가끔 개입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연극의 골간을 이루는 것은 극중 극인「류시스트라테」이다.「평화씨 !」가 순수 창작품과 거리가 먼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평화씨 !」는「류시스트라테」를 한국적 상황의 문맥에 맞게 적절하게 원용했다는 점에서 그 창조적 질을 평가할 수 있다.
「평화씨 !」의 골간을 이루는 연극 속의 연극「류시스트라테」는 오랜 전쟁에 지친 그리스 여인들이 남자들의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해 성 파업을 벌인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발상은 자체가 재기 발랄한 데다가 극적 상황의 전개나 극중 언어도 매우 흥미로우며 여성 문제와 반전이라는 사안이 지닌 현재성도 놀라울 만큼 시의 적절하다.
그리스 여인들은 류시스트라테의 주도하에 남자들에 대한 성 파업을 일으킨다. 동기는 여자들의 전쟁 혐오이며, 목적은 성 파업을 통해 남자들에게 평화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흥미로운 점은 성 파업 도중에 나타나는 여자들의 반응과 그 이후에 일어나는 남자들의 반응이다. 성 파업을 벌이자는 류시스트라테의 주장에 대한 여자들의 불평, 막대한 전쟁 자금이 보관된 아크로폴리스에서 점거 농성을 하던 중 남자 생각에 농성장을 빠져 달아나다 붙잡힌 여자들의 궁색한 변명, 우스꽝스럽게 몸이 뒤틀어지는 남자들의 성적 허기증, 여자들의 성 파업에 굴복한 남자들의 평화조약 체결 등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소극적 상황은 오늘날의 희극적인 웃음의 현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글 - 이상우
'희극은 '탈출과 반역'이고 그것을 통해 느끼는 '자유와 쾌감'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탈출하는 쾌감, 관습을 반역하는 자유.... 언젠가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나중에 혹시 나에게 공연 공간이 생기면 이름을 '차원이동무대'라고 짓겠다고 했다... 연극은 그런 것이고 희극은 더욱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다... 이 연극도 그런 연극이었으면 좋겠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특히 <류시스트라테>는 현대 연극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천재적인 상상력과 풍자와 해학을 구사하고 있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기원전 그리스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2,40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것이다. <류시스트라테>는 기원전 411년에 초연되었다... 이 연극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2400 년전의 <류시스트라테>와 2400 년후의 <류시스트라테를 연습하는 아파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간단히 말하면 〈류시스트라테>의 코러스 부분에 '아파트 여자들'이 들어가 있다... 내년이면 분단 반세기이다. 우리의 통일도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이 아니라 아리스토파네스적인 발상으로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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