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임하 '항쟁의 노래'

clint 2023. 5. 20. 21:27

 

작가 자신이 소련에서 태어나 소련에서 공부한 고려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러시아의 문학과 음악, 미술과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우선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작품의 소재와 인물 구조는 러시아 작가 고리키의 <어머니>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어머니>의 중심인물인 어머니 페라게야는 아들 파벨의 체포소식을 듣고 법정 항의하는 당당한 어머니상으로 그려진 것에 비해, <항쟁의 노래>의 어머니는 항쟁을 이끌다가 죽음을 당한 아들을 통해 새롭게 각성하여 항쟁 대열에 앞장 서는 의연한 어머니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러시아 소설 뿐만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와 글린카의 음악작품들, 그리고 화가 레핀텐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러시아 예술작품을 직접적으로 인용 소개하면서, 민중의 삶과 예술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으로써 러시아 예술가들이 민중들의 삶에 깊은 애착과 영향력을 발휘한 점을 고려하여, 이 작품의 주동인물 박동철은 당시 남한의 현실과 민중들의 삶을 깊이 깨우쳐 "항쟁의 노래를 작곡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서사의 중심축으로 삼았던 것이다. 깊은 각성 뒤에 창작한 노래는 미군 철수 데모 현장에서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힘차게 부르는 3막의 시위 장면을 통해 울려 퍼지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문학(예술)과 현실 문제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나타내려 하였다. 주동인물 동철의 대사가 이를 입증한다.

<하의도>와 함께 남한의 현실을 소재로 한 <항쟁의 노래>(3), 1947 10 '한반도에서 외국(미국) 군대의 철수와 조선인에게 조선통일정부 수립 문제를 맡길 것을 요구한 소련 측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는 남한내 좌익세력의 활약상을 극화한 작품이다. <항쟁의 노래>는 주동인물 박동철의 자기 성찰 과정(1)과 현실에 참여하는 예술가로서의 변모 과정(2),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 끝에 안타깝게 희생당하는 과정(3)을 순차적으로 극화하였다.

남한의 인텔리 집안의 둘째 아들인 박동철은 아버지와 형의 부재(형은 의전을 다니다가 학병에 징집되어, 아직 생사를 모름) 상태에서 결단력이 부족한 유약한 음악교사로 등장한다. 작품 도입부부터 반동인물의 역할을 맡은 그의 숙부의 횡포와 사촌의 막무가내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른 채 남모르는 고민과 짝사랑에 빠져 있는 성격적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비해 그의 숙부 원팔은 한민당원으로서 출세를 위해 동철네 집안재산을 함부로 처분하는 악행을 서슴지 않으며, 그의 사촌 갑송은 서북청년단원으로서 노동자와 농민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는 만행을 일삼고 있다. 1막에서는 한민당의 열성분자와 서북청년단의 핵심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는 반동인물들이 심약한 중산층 인텔리인 주인공 박동철을 압도하는 구도를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1막 후반부에서 우익 테러단에 쫓기던 청년을 숨겨주고 그의 목숨을 구해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극의 흐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2막에서 그동안 박동철의 집에서 간호 받던 전평원 출신의 인쇄 노동자 철수가 생명의 은인 동철에게 남한 내의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게 일깨워 주었다. 점차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동철에게 의외의 인물 영희가 찾아와항쟁의 노래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작품 제목과 같은 동명의 노래 작곡을 유도하였다. 2막에서도 반동인물은 더욱 심한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과도한 소작료에 시달리는 가난한 농민들을 탄압하며, 노동자들의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테러를 일삼는 악행을 거듭한다. 그러므로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폭력배들, 그리고 배후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미국(미군)의 존재가 주동인물 박동철로 하여금 각성케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고, 영수의 일깨움과 영희의 청탁이 그를 변화시키는 촉매 요인이 되어, 그를 농민들이 탄압 받는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반동세력들에 의해 박동철의 집안이 철저히 응징 당한 가운데 시작된 3막에서 박동철이 작곡한항쟁의 노래가 각종 시위현장에서 울려 퍼질 정도로 박동철은 이미 민중의 편에 선 예술가로 우뚝 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외국군대 철수를 주장하는 인민 항쟁의 현장에서 앞장선 그는 테러단의 총격에 쓰러지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다시 그의 어머니의 각성을 유도하게 되며, 그의 어머니는 민중의 어머니가 되어 시위에 앞장서는 감동적인 결말부를 맺는다. 3막에서는 박동철과 민중들/우익 테러 단과 미군의 기존의 갈등 구조를 넘어서, 박동철을 대신해서 어머니가 민중들 편에 서는 것으로 결말부의 갈등 구조상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 작품에서 극중 전경 사건 이외에 배경이 되는 사건들도 극 전개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구조로 형상화되었다. 각종 노동자들의 시위와 우익의 테러 사건, 평택의 소작쟁의, 그리고 남산의 미군 철수 시위 등과 북한에 정착한 박동철의 형 박동수의 편지로 전해지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극중 '지금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하였다.

 

 

<작가 약력>

1911년에 노동자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1939년까지 전문학교 및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그후 교육계, 문학, 연극예술운동에 종사하였음. 번역한 작품으로 끄노래 작 희곡 <어둠에 비치는 별>, 씨모노프 작 희곡 <로씨야 사람들>, 아놀드 쥬쏘 제임스 고우 합작 희곡 <브레트 중위>, 고로네츄크 작 희곡 <와과의 크레체트>, 글라드꼬브 작 소설 <씨멘트>, 베르빈쵸프 작 소설 <소년시절 로부터 영예를 지키라>, 희곡 <모스끄바 성격>, 희곡 <어느 한나라에서>가 있으며, 창작으로는 희곡 <항쟁의 노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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