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성철 '먼데이 PM 5'

clint 2023. 5. 21. 14:15

2002.3월 극단 신기루만화경 초연

 

 

월요일 오후 5.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놔 버리기에도 어정쩡한 이 시간

무슨 일이 생겨도 사람들 생각은 제각각...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이다.

뜻밖의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한 정신병자가 버스 안에서 총으로 세 명을 살해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상의 무료함이 최대치에 달한 이 시간. 삶은...

빛 바랜 봉숭아 꽃물처럼 아름답다.

 

 

전적 25 10 15패의 3류 복서, '봉세' 한국랭킹 2위에 올라있지만

말이 좋을 뿐, 해당 체급의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칙으로 인해 시합에 진 후 몇 년 동안 링에 오르지 못한 채,

서른이 훌쩍 넘은 부담스러운 나이가, 봉세로 하여금 은퇴를 고민하게 한다.

봉세가 글러브를 끼게된 이유는 챔피언이 되는 것도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링 위에서 춤추던 라운드걸 민자에게 한 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링에서의 첫만남 후 10여 년 넘게 계속되어온 민자에 대한 외사랑은

고달픈 삼류인생을 살아가는 봉제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세월은 그녀의 눈가에 싸늘한 예수와 체념만을 드리우게 했지만

봉세 기억 속의 그녀는 여전히...... 제비꽃처럼 아름답다.

 

 

민자는 결혼에 실패한 뒤, 평탄치 않은 삶을 끌어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봉세에게 전화를 해 위안을 얻고는 하지만이젠 그 마저도 신통치 않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데라고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사랑 가득한 고향뿐이다.

더 이상 기댈 없이 흘러가는 민자의 시간

또다시 습관처럼 전화를 건다. 그 남자 봉세에게.

봉세는 시합이 없을 때면 흥신소 일을 한다.

그나마도 결코 굽히지 못하는 꼿꼿한 자존심 때문에 번번히 실패만 거듭한다.

설상가상 항상 대견스럽게 여기던 동생 '봉호'가 변심해버린 여자 때문에

군에서 탈영을 해 찾아온다소대장의 권총을 몰래 소지한 채....

나아지는 것 없이 꼬여만 가는 봉세의 시간.......

기다리던 그녀의 전화가 온다.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그녀를 월요일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한다.

월요일 오후 5...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뉘엿뉘엿 저물녁

봉세와 봉호 형제는 버스를 타고 민자 만나러 가는 길이다.

민자는 하염없이 봉세를 기다리는데….

 

박성철

작가의 글

길거리 혹은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건들이 있다. 가해자들은 정신적 문제가 있으며 가해자들의 그러한 정신적인 문제는 트라우마 같은 것들로 변형되어 피해자들에게 전이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사소한 흔적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이러한 연결들은 비극적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부조리하다. 우리의 생활은 사소한 비극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대 비극성에 비하면 너무도 사소하기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그것에 부딪히더라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런 사소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소하게 화내고 사소하게 슬퍼 하며, 사소하게 즐거워하다가 사소하게 망각한다. 어찌 보면 비극적이기도 하다이 이야기는 그런 비극성에 시달리다가 곧 잊혀지거나 스스로 잊혀진 불완전한 사람들에 대한 것들이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잡다한 비극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조리한 결말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된 조각들이다. 물론 결말이 비극이라 해서 그들이 가진 희극성이 없을 수 없고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 파편을 닮은 존재들에겐 희극성 또한 파편 같은 것들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인간들에 대한 것들이며, 마치 끝말잇기 하듯 그러한 파편들을 끼워 맞춘 미학적 짜깁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범 '두 남편을 둔 여자'  (2) 2023.05.22
김병균 '미로게임'  (1) 2023.05.21
이상범 '쑥부쟁이'  (1) 2023.05.21
임하 '항쟁의 노래'  (2) 2023.05.20
김병균 '블라인드'  (1) 2023.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