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위해 도로를 횡단한 고라니, 평화사절단으로 날아간 비둘기들, 우주로 향한 잡종 개 라이카와 친구들. 모두 길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온갖 소문과 추측 속에 사건의 진실이 묻히려는 찰나, 잠깐 거기 멈춰선 당신! 목격자인가 방관자인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아니면 인간일 뿐인가.
<로드킬…>엔 길을 떠나다가 자동차에 치인 고라니, 우주선에 태워진 러시아의 떠돌이 개, 서울올림픽 개막식 성화 불에 타 죽은 비둘기 등 죽음에 내몰린 동물이 나온다. 11명의 배우는 30여 개 배역을 소화한다. 때로는 동물을, 때로는 사람을 연기하며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연극은 사람 때문에 생명을 잃은 슬픈 동물 이야기를 보여주며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뻔한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불친절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서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사가 있지만, 맥락이 없어 보인다. 배우들은 독특한 어조로 끊어 읽거나 고함치듯 말을 내뱉는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 했겠죠.”
자유를 빼앗긴 존재들이 일제히 소리내기 시작한다. 연출가 구자혜의 신작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인간의 욕심으로 발생한 동물의 죽음, 그 이면을 쫓아 마침내 용기 있는 한 발을 내딛는다. 담담하게 뱉어내는 동물들의 마지막 순간 앞에 서투른 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다.
작가의 말 - 구자혜
현실에서 누구나 무엇이 될 수 있듯이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존재는 현실에서도 무대에서도 하나로 정체화되지 않기를 주장한다. 이 연극에서 동물들의 죽음은 의도적 은유이자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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