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명진 '루비'

clint 2017. 2. 9. 22:27

2017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무대는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십자형으로 쌓아놓고 그 위에 컴퓨터 노트북이 놓였다. 하수 쪽에 커다란 비닐봉투와 그 앞에 조그만 상자 곽이 놓여있다. 배경 쪽에는 스크린과 그 앞에 마술사가 등장해 매직 쇼를 할 자리가 마련되고, 상수 쪽에는 트렁크 형태의 좌판과 그 앞으로 객석 가까이 푸른 잎 모양의 조형물이 철제 받침대 위에 놓여있다. 방송에서 매직 쇼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마술사의 빨간 눈의 흰색 비술기가 갑자기 사라진다. 지방공연을 떠나는 마술사는 방송국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비둘기를 찾아달라고 한다. 매직 쇼 담당 남성작가는 방송국에 남아 매직 쇼 관련 해설 자막을 집필한다. 작가의 여자 친구가 찾아와 바닥에 놓인 흰색 상자 곽을 열자 그 속에 비둘기가 들어있고 꿈틀거린다. 여자 친구는 커다란 봉투와 함께 비둘기 상자 곽도 챙긴다. 한편 방송담당 여직원은 매직 쇼에서의 비둘기 분실이 자신의 악몽과 연관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의 이름이 <루비>라는 것을 알려준다. 남성작가의 여자 친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가져온 상자 곽을 열고 비둘기에게 모이를 준다. 비둘기가 상자 곽 안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방송이건 연극이 끝나면 무대감독이나 조연출에 의해 소품이 정리가 된다. 그 과정에 잘못 정리된 소품, 그것도 살아있는 적안(赤眼)의 백구(白鷗)에 초점을 맞추다니, 창아기발(創雅奇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차기 작품에도 기대를 한다.

 

 

 

 

 

심사평

지난 달 배삼식 작가와 신춘문예 희곡 분야 심사를 마친 장우재 극작가 겸 연출가가 지면여건상 전문이 실리지 않아 아쉽다며 개인 SNS에 심사평 전문을 공개했다

그는 희곡이 문학과 공연 사이에서 박쥐처럼 존재해도 현실에서 창작의 원천을 길어 올려야 하지만 그것이 새롭게 발견된 현실이라야”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한다. 더불어 당선작과 논의대상작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을 “‘새롭게 발견된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지로 삼았음을 밝힌다

이어 살잉모의’, ‘바닷물맛 여행’, ‘’, 선정작 루비의 심사평을 차례대로 이어간다. 그는 앞으로 나올 극작가들은 현실의 새로운 발견을 기존 루트에서만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곳에서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루비를 선정했다며, 덧붙여 모든 젊은 작가들의 전투를 응원한다.”는 격려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극작가 장우재가 본인 SNS 계정에 올린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심사평 전문이다

희곡은 사건과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까닭에 유독 쉽게 느껴지는 걸까. 드라마를 넘어선 현실의 일들이 많아서인지 기다렸다는 듯 현실 문제들이 투고 작 속에 알알이 포진되어 도착했다. 그러나 함량미달이 많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희곡이 문학과 공연 사이에서 박쥐처럼 존재해도 현실에서 창작의 원천을 길어 올려야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문제는 그것이 새롭게 발견된 현실이라야 가능하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나 팩트로 쓰여진 뉴스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당선작과 논의대상작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였다. 그렇게 새롭게 발견된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가. 극작술의 미흡함에 있어선 대동소이하지만 당선작 외에도 고통 받는 현실과 뒹굴고 있는 그들만의 고군분투를 응원하고 싶다

살잉모의는 온라인 게임 상의 욕망이 어떻게 현실에서 살인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작가가 오랫동안 그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의가 살인 이후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상황, 선택 의 삼박자를 타고 나타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맛 여행은 연극을 해본 사람이 쓴 듯 이야기라인이 분명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가 약하고 가족의 봉합을 암시하는 결말은 연극이 따뜻하기만 해서 좋을까하는 오래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지속 및 진화되어야 한다.

는 재치롭다. 손톱을 먹은 쥐가 그 사람처럼 바뀐다는 설화적 모티브를 미래 사회 인간 복제와 맞붙였다. 어떻게 보면 ‘kafkaesque'. 그러나 발상을 넘어서 그러한 세계의 개연성이 확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이제 심연의 구조로 나아갈 차례다.

 

당선작인 루비는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요즈음의 존재 불안을 신선한 필치로 그려냈다. 자기 세계가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질문을 갖고 그 너머를 보려고 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영화적이다. 영화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아직 연극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공연이 되면 관객이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루고자 하는 것이 완전히 작가의 것이 되면 관객은 그걸 아주 쉽게 알아본다. 문학적 공력이 더 돋보이는 이 희곡을 선정한 이유는 앞으로 나올 극작가들은 현실의 새로운 발견을 기존 루트에서만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곳에서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세계는 양태를 계속 바꾸고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인간과 현실의 문제는 여전하다. 이제 극작가들이 답할 차례다

 

 

 

 

당선소감 - 김명진

 

저 비둘기는 왜 저렇게 더러운가. 어느 마술사의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비둘기 한 마리가 제게 오래도록 떨쳐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본디 흰빛이었을, 그러나 사람 손을 너무 타서 더 이상 희다고 할 수 없는. 본디 새였을, 그러나 더 이상 자유롭게 날지 않으므로 새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은 곧 저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질문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했고, 스스로 문학적 증명이라고 부르는 글쓰기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백지는 채웠지만 답은 여전히 찾는 중입니다. 오늘의 과학오늘의 문학이기도 합니다. 과학과 마술이 한 끗 차이이듯 문학과 엔터테인먼트가 한 끗 차이가 되어버린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불 꺼진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저만의 무대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방송극도 아니고 연극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말과 몸짓과 빛이 각각 연기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장르에 대한 무지가 저로 하여금 거침없이 쓰게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글쓰기가 딸을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엄마,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 글이 얕으나마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글로써 아름답고 귀한 것을 빚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신 시인 K와 추상을 구체로 디코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힘을 보태준 공학자 H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을 기꺼이 받아들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결정에의 고민이 헛되이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1982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다큐멘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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