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성덕대왕 신종)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이다.
광화문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막 올린 '천년보다 깊은'(변영국 작, 민복기 연출)은 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주종 장인들의 이야기다. 에밀레 종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쇳물에 아기를 넣었다'는 그 충격적 설화를 떠올린다. 연극 역시 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인 주종박사 박부부는 궁극의 신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손녀를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후배 주종박사 박종익이 있기에 박부부는 쇳물에 아기를 넣는 방식의 주조를 쉽게 이루지 못한다. 대신, 박종익은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을 계속한 끝에 아기 따위를 넣지 않고 훌륭한 종을 주조하는 방식을 밝혀낸다. 그러나 신종 제조를 둘러싼 박부부와 박종익의 갈등은 박부부 집안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종을 만들기 위한 합금기술을 연구하던 주종박사 박부부는 수은을 마시는 위험한 일까지 불사하다 미쳐버린다. 박부부의 아들은 아들대로, 종을 만들어 '대박사'라는 지위를 차지하려고 박종익이 밝혀낸 신종 주조 기술을 가로채고, 야망을 위한 위험한 도박에 나서다가 파란의 운명 속으로 빠진다….
이처럼 '천년보다 깊은'의 스토리는 드라마틱하다. 연극의 마지막엔 그 모든 갈등과 파국을 끌어안으려는듯 긴 여운의 종소리가 객석을 향해 울린다. 하지만 연극이 남기는 울림은 그 종소리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스토리의 처절함과 연극의 감동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각본은 좀더 다듬어졌어야 했다. 손녀에 대한 사랑과 종의 완성을 위한 집념 사이에서 갈등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같은 것을 왜 좀더 맛깔지게 풀어내지 않았을까. 양념처럼 사이사이 장면에 끼여들어간 재담 신들은 연극의 재미를 위한 적절한 이완을 위한 것이겠지만 너무 지나쳐, 장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의 분위기를 흐린다. 이 연극은 모처럼의 진지한 연극이지만, 진지한 것만으로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문제는 역시 연극적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