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상열 '물위의 왈츠'

clint 2016. 11. 17. 19:51

 

 

 

많은 사람들이 <사의 찬미>라는 영화, 연극, 노래를 통해 최초의 대중가수 윤심덕과 최초의 표현주의 극작가 김우진의 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동반자살을 했을까요? 우리의 연극은 그런 물음에서부터 출발했다. 둘 다 예술가로서 어떤 한계에 처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죽음을 한세기의 로맨스로 생각하기엔 이 둘의 생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다. 둘 다 문학(연극)과 음악(성악)이라는 분야에서는 선각자란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개척자들이었으니까. 만약 그들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현해탄에 몸을 던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자살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선택의 여지없이 죽었다면 그것은 타살이다. 관부연락선 도꾸주마루에 오르기전 김우진은 장손으로, 외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의 책임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질식당하기 직전이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위해 살고 싶었던 김우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토록 불쌍한 사람으로 살았다. 윤심덕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시대의 윤리는 여자인 그녀를 가만 놔 두지 않았다. 끝내 그녀는 자유연애를 외치는 한심한 요부로, 창가가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줄거리
1926년 8월. 막이 오르면 관부연락선 도꾸주마루 갑판위에 김우진과 윤심덕이 서있다. 식민지 나라의 비애를 짊어지고 동경유학길에서 만난 젊은 남녀는 서로간의 깊은 유대와 공감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표현주의 극작가 김우진.
그는 자신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가업만 잇기를 바라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그에게는 장손으로, 아들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너무나 막중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개성과 자유를 노래했지만 어느새 그녀는 조선의 대중앞에 창가가수로 전락하고 만다. 그녀를 질책하는 대중들의 유교적 사고와 그녀의 스캔들로 조잡해진 신문기사들... 그녀는 조선의 여자이고 싶었고, 조선의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접고 더 이상 자신이 성악가로 조국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김우진과 윤심덕은 현해탄 위에서 서로의 깊은 상처를 확인하고 위로한다. 김우진은 내일이면 다시 현실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비관한 채 바다에 몸을 던지고, 이를 목격한 윤심덕도 여성에게 인색한 근대윤리 속에서 최고의 성악가가 되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며, 죽음을 감행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해서 죽음을 택한 것이고, 그들은 예술뿐 아닐 모든 분야에서 치열했다는 것이다

 

 

 

 

 

김상열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문학박사)
  • 극단 <오늘> 창단 및 상임연출가 역임
  •  現 대전대학교 문화예술감독現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겸직
  • <63년 9월생>, <쉿 호루라기 소리가>
  • <아버지가 된다는 것>, <물위의 왈츠>
  • <토킹위드>, <안녕, 체홉아저씨>
  • <소풍가다 잠들다>(2009년 전국연극제 대상 수상작)
  • <휴먼연극-기념사진>, <그들의 사랑법>
  • 희곡 연출집 : 『TV 호모쿠스』,『물위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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