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스테스는 황제가 거주하던 궁성의 경비원이었다. 어느 날 시위가 일어났고 군중들이 왕궁으로 난입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인 멘쉬키가 왕비의 머리를 철봉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데모스테스는 그를 향해 발포하고 멘쉬키는 죽게 된다. 이후 왕국이 몰락하면서 데모스테스는 새 왕국에 의해 사형을 당했으나 얼마 안 있어 새 왕국이 또 망하자 데모스테스의 살인 행위는 다시 애국적 행위로 돌변했다. 그러나 그 왕국이 또 망하고 다시 새 왕국이 생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면서 사후세계의 재판 역시 5천년 동안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이에 지친 데모스테스는 제발 자신을 역적으로 결론지어 달라고 부탁하나 검사, 변호사, 서기는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또 다시 재판을 유예한다.
이 작품은 '착한사람이 하루 아침에 악인이 되고 악인이 선인으로 돌변하는 것이 한심스러워 쓴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황제가 사는 성의 경비원이었던 데모스테스가 군중시위가 벌어졌을 때 도망가지 않고 혼자 남아 시위를 진압한 것에 대해 왕국이 바뀜에 따라 그의 그러한 행위가 애국적 행위와 살인행위로 번갈아 평가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기득권층의 안일함과 현상유지를 위해 무고한 개인이 피해받고 희생당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이근삼의 다른 작품<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제18공화국>과 함께 당시의 정치현실을 우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기득권층의 안일함과 현상유지를 위해 무고한 개인이 피해받고 희생당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사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작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우화적 재판극이다. 궁성의 경비원인 데모스테스는 경호부장의 명령으로 데모를 진압하다가 군중의 한 사람인 멘쉬키를 죽인다. 그는 살인죄로 사형당한 후 저승의 재판정에 서게 된다.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데모로 얼룩졌던 1960년대의 상황을 우의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관객이 사건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전개시킨 건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이해된다.
재판과정에서, 여왕과 경호부장의 내연관계, 본인은 계속 부정해 왔지만 경호부장의 발포명령이 있었던 사실 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데모스테스의 증언을 통해 왕실 주변의 권력을 둘러싼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사가 하나하나 밝혀진다. 심지어는 재판을 주도하는 재판장, 검사, 변호사, 서기의 부정도 폭로된다. 그의 살인은 법적으로 무죄임이 입증된다. 그러나 재판의 마지막에 5천 년 간이나 끌어온 판결은 다음 법정으로 연기된다. ‘저승의 재판정’이라는 시공간 개념을 설정하고, 역적과 애국자의 상관성을 지속적으로 반전시키며, 재판의 허구성을 아이러닉하게 풍자한 이 작품은 ‘재판 공해’에 시달려 온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1958년 영문희곡<끝없는 실마리>를 미국 캐롤라이나극단에서 첫 공연한 뒤 1959년<사상계>에 현대인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단막희곡<원고지>를 발표함으로써 국내 문단에 데뷔한 이근삼은 1960년대 초반<동쪽을 갈망하는 족속들>,<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등단할 당시만 하더라도 사실주의 일변도였던 우리 창작극계에서 반사실주의적 경향을 선보이며 등장했던 이근삼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다.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정치와 경제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많은 새로운 문제를 노정한 시대였다. 4·19와 5·16으로 한껏 고양된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군사독재정권의 수립으로 억압당했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가속화된 산업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야기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새로운 사회 현상을 묘사하고 진단할 연극의 변화는 필수적이었으며, 오랫동안 사실주의에 경도되었던 한국연극계가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한 것이 1960년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일어난 한국연극계의 반사실적 경향을 대표하는 극작가의 선봉에 이근삼이 위치한다. 이 시기 이근삼의 작품들에서는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와 금전만능 풍조에 물든 사회현실에 대한 분개, 그와 같은 현실의 개혁에 무력한 지식계층의 자조, 그리고 계몽에 대한 관심 등이 내용적으로 주조를 이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에서도 이른바 한국리얼리즘 연극패턴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도전이 읽혀진다.
이근삼의 희곡 「데모스테스의 재판」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화의 가상적 세계를 설정해 비정상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풍자함으로써 작가의 희극적 태도와 놀이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재판극으로 데모스테스의 행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토론하고 배심원의 판결에 따라 심판이 내려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데모스테스는 경호부장의 명령을 받아 궁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막다가 총을 발포하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게 되는데 그의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재판이 벌어진다. 문제는 데모스테스에 대한 역사적 판결이 왕국의 몰락 이후 건국되는 왕국의 정당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데모스테스의 행위가 민중들의 시위를 막은 악질적 경비 행위인지 폭도들로부터 국가를 보호한 애국시민의 행위인지에 대한 결정은 관객의 판단에 맡겨진다. 데모스테스의 재판 과정은 역사가 승리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4.19혁명 당시의 발포책임과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를 우회적으로 문제 삼는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나타나는 시간성은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지시한다. 과거의 사건은 지금 현재 내부에 흔적을 남기며 지속하고 다시 사후적으로 재해석된다는 점에서 데모스테스의 재판은 종결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 그 자체가 지니는 사후성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근삼은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끌어와 지금 현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경비병 데모스테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열린 해석의 과정에 맡겨지는 것처럼 부정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한 시민들의 시위도 역사적 해석을 요구한다. 민중들의 저항 행위가 왕국의 입장에서 폭도들의 폭력행위로 규정된다고 하더라도 민중들의 저항 행위가 지닌 역사적 의미는 사후적으로 복원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모스테스의 재판은 양가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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