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민정 '브라질리아'

clint 2016. 4. 25. 16:18

 

 

 

2003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 <브라질리아>는 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허풍과 환상에 젖어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드넓은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은 <브라질리아>는 돈을 벌기 위해 브라질로 떠난 남자가 18년 만에 빈털터리로 귀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봉틀을 돌리며 뒷바라지 하는 아내와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자신의 욕망에 따라 딸의 약혼자를 꾀어 브라질로 떠나 버린 남자. 이 작품은 욕망을 성취하려는 사람과 그 욕망에 희생되는 사람의 삶의 굴레, 그리고 이 욕망이 삶을 지속시켜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우 상징적이고 부조리한 작품 <브라질리아>는 일차적으로는 브라질의 수도를 가리키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허망한 욕구들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여러 관계-모녀간의 관계는 무대 장치와 공간의 활용에서도 반영된다-로 이루어진 이 극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암시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부조리한 대사로부터 온다. 과장이 섞인 상징적인 대사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글
뒷통수에 원형탈모가 생겼단다. 거울을 등지고 앉아 휑한 부위를 보려고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원형탈모증상에 대한 이미지를 검색해본다. 웃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볼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경과를 물어본다. 제각기 한 마디씩 진단을 내려준다. 병원에 간다고 다를 것 같지 않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는데 검은 콩밥 위로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 아픔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랴. 브라질리아가 다시 공연된다. 이 작품은 나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쓰게 된 동기가 그러했고, 글을 쓰면서도 그랬고, 글을 쓴 후에도 이 작품을 둘러싸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덮어두거나 남들하고 수다떨 듯이 웃어버리거나 웃다가 찔끔 눈물이 나는 정도의 위로였으면 했다. 그런데 다시 들추어 그 상처를 덧나게 한다. 그 슬픔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랴. 이번 재공연의 기획은 신춘문예 단막극제의 뒷풀이자리에서였던 것 같다. 이제 막 공연을 마치고 어색한 술자리에 앉아있는 초보작가에게 어떤 사내가 다가와 작품을 2막으로 고쳐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신경을 고양이 발톱처럼 세우고 사내를 쳐다봤다. 새마을 운동 시절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사내가 명함도 아니고 종이 쪼가리에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앗, 그 박근형! 사내는 바로 그분으로 정정된다. 그리고 얼마 후 김태수 선생님으로부터 그분이 '쥐'와 함께 '브라질리아'를 공연했으면 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 말을 들었었나 잊혀질 만한 몇 달 후 공연 날짜와 극장이 정해졌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이 정말일까 하던 어느 날 기획사에서 작가의 글 청탁이 왔다. 독촉 전화를 받으면서도 작가의 글을 쓰지 못했다. 프로그램에 실리는 작가의 글은 너무 사치스럽다.
작가로서는 내 대사를 곱씹으며 연습하는 배우들이 눈물나게 고맙고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처음 만나는 가족인 양 반가울 뿐인데. 공연을 앞두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마디뿐이다. 이 지면이 마음을 담아 이 말을 전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재공연을 기획해준 박근형님께, 부족한 작품을 다시 연출해 주시는 김태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글에 이 한마디만 올려도 건방져보이지 않을 그날까지 나는 일기같은 작가의 글을 쓸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도 잊지 않는다.


p.s
우리 엄마는 다시 배우들을 위해 생강 달인 물을 끓여주실까. 작가의 길을 걷는 딸을 보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으실까.
우리 배우는-나의 분신 같다며 지인들이 찬사를 보낸-이번 공연에도 재봉틀을 돌리느라 얼마나 손목이 아플까.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는데 관객이 많이 들겠지. 그래서 공연하는 배우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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