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희창 '소슬한 바람'

clint 2016. 2. 29. 16:04

 

<소슬한 바람>은 1958년 방송극으로 발표됨

 

 

<소슬한 바람>은 권력에 아부하는 세태를 풍자한 극이다.

서울 근교 한적한 곳에서 자식도 없이 노 부부가 생황하고 있다. 노인은 교장선생님으로 오래전 정년퇴임했고 일없이 책을 읽으며 낚시하고 노후를 보내고 있다. 교장 시절에는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붐볐다는 부인의 얘기지만 노인은 다들 바쁘기 때문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차로 급히 찾아온 애제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오래간 만에 주례를 서기로 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제자는 일단 주례를 못 보게 되었던 장관이 다시 주례를 보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외출 차비까지 한 은사를 주저앉게 하고 돌아가고 만다. 소슬한 가을 바람이 노인의 읊는 시조와 어울리며 막이내린다.

 


작가의 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희곡작가는 아니다. 연극인은 더더구나 아니다. 내가 몇 해 동안 무대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해도, 그건 그때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생활의 방편이었지. 연극이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때 내 생각에는 연극은 좋은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희곡이 문학으로서는 몰라도 그것을 극화하려 했을 때는 많은 사람의 힘을 빌어야 했고, 연출가의 창의와 연기자의 호흡을 거쳐 나온 것은 그것이 희곡보다 잘되었으면 잘된 대로, 못되었으면 못된 대로 작가의 명예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연극은 고생바가지다'하는 것만을 체험하고 먼지를 털고 나왔을 때엔 속히 시원했었다. 끝없는 고생바가지 속에서 벗어난 것만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연극은 가치 없다 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던 내가 그만두자마자 매일같이 희곡을 낭독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되었으니, 나는 어느덧 연극에 인이 박히고 중독이 되어 있었는가 보다. 여기의 작품들이 써졌을 때만 해도 극단이나 극장이 별로 없었다. 만일 있었다고 해도 단편극은 상연하지 않았고 관중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대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 할지라도 손쉬웁게 방송으로 발표하고 말게 되었다. 일반이 왜 단편극을 좋아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 도리가 없지만, 나로서는 짧은 극의 매력과 함께 읽는 희곡으로서는 흥미를 버릴 수가 없다. 그러면서 劇으로서의 기교는 나의 作品에서는 전부 억제하고 무시해 버렸다. - 1986년 늦가을에 지은이

 

 

 

수록작품 발표연보-
집놀이
- 1946년<신천지>5월호
- 1961년 KBS 라디오
소슬한 바람
- 1958년 KBS 라디오, TV
- 1958년 민예극장 무대공연
보금이의 노래
- 1962년 KBS 라디오
멍추 같은 영감
- 1965년 《演劇》창간호
비석
- 1966년 TBC-TV
- 1966년 민예극장 무대공연
- 1977년 KBS-TV
어부 살이
- 1966년 TBC-TV
- 1977년 KBS-TV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진 '십오분 간'  (1) 2016.02.29
배강달 '붉은 달'  (1) 2016.02.29
이만희 '오늘'  (1) 2016.02.28
허영 '배나무집 딸'  (1) 2016.02.28
정복근 '짐'  (1) 201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