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만희 '오늘'

clint 2016. 2. 28. 20:07

 

 

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막 시집간 동생이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30분 뒤 동생의 자살. 왜? 누가?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슴에 응어리진 과거를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언니의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난 사건들의 장면 장면이 맞물리면서 안개가 걷히듯 사건의 윤곽이 잡힌다. 심증은 있는데 인적 증거가 없는 여인은 황시영 검사를 지목하여 그의 자백을 듣고, 죄를 응징하기 위해 1년 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시골에 있는 한 조각가의 작업실에서부터 이 연극은 시작된다. 부장 검사인 황시영은 결박당한 채 여인의 고문을 받고 있다. 그는 집요한 질문과 육체적 고통보다는 자신이 누구에 의해 무슨 잘못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더 곤혹스러워 한다. 선글라스에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채 사내를 고문하는 정체 불명의 여인. 거듭되는 질문과 항변, 그리고 고문·····.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너무나 쉽게 짓밟아. 하지만 힘 없는 자가 힘 있는 자를 응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래서 오늘, 나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쳐서 너를 처단하는 거야." 라는 말과 함께 오늘 그녀는 내일의 빛으로 남는다.

 

 

 

 

작가 이만희는 해묵은 질문을 던진다. 법이 가해자를 편들 때 피해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도(道) 아니면 도(刀)다. 도를 닦거나 칼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난마처럼 얽힌 어제의 사연을 칼로 베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멸하는 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황시영 검사는 어느날 영문도 모른 채 한 여인에게 납치된다.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그는, 지하실에 갇힌 채 여인의 강요에 이끌려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힘을 가진 자가 저지를 수 있는 온갖 권력형 비리를 자백하지만, 여인의 고문은 끝나지 않는다. 이 여인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황검사가 지쳐갈 즈음 여인은 정체를 드러낸다. 바로 어린 시절 그에게 농락당했던 조카 경선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긴장감은 황검사의 궤변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선한 자는 나약하게 마련이고, 세상을 사는 지혜는 권모술수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오래 전 그의 아버지는 형사에게 무고하게 뺨을 맞은 뒤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맸다. 그 기억 때문에 황검사는 ‘선량함이란 나약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오늘>은 일그러진 시대의 초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누가 힘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시대. 그 속에서 가해자는 끝내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른다. 또 가치 기준을 공유할 수 없는 시대라면 피해자의 칼은 한낱 복수일 뿐, 단죄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경선은 “돌아볼 줄 모르는 당신도, 당신을 증오하느라 일그러진 나도 용서하지 못하겠다”라며 자폭한다.

 

 

 


<그것은 목탁 속의 어둠이었습니다><불좀 꺼주세요><좋은 친구들>을 통해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해 온 작가 이만희의 입담을 이 작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시·공간이 한정되어 있는데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대사의 밀도와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 덕분이다. 특히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을 때와 총을 손에 넣은 뒤 황검사의 태도가 표변하는 것은, 가치보다 힘에 이끌리는 인물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근친상간이라는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는 누가 단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소재의 파격성에서 말미암는 긴장감은 추리물에서는 제격이지만, 충격 이상의 깊은 울림을 보장하지 않는다. 악한이 단지 죽일 놈일 뿐이라면 별 재미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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