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생애와 업적을 극화한 작품이다.
헨리 덴커 작인 이 작품은 실제로 히스테리성 통증환자였던 한 여인을 학계의 조롱과 반대에 맞서 집년어린 연구와 노력, 그리고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완치시키는 프로이드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또한 극적인 구성도 잘 갖추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196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엔 1978년 창고극장에서 이원경연출로 초연됨.


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프로이트는 파리의 정신병원에서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통한 치료 과정을 보게 되면서 인간의 내면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 같은 의사이자 정신적인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던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통해 엘리자베스라는 젊은 여성 환자를 완쾌시키게 된다. 그러나 보수적인 학계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회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표한 프로이트는 심한 모욕을 받는다.

정신분석의 시조(始祖) 「시그문트 프로이드」가 의료기술의 개혁에는 물론이고 20세기의 인류사상과 문화발전에 기여한 바는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의 탄생 100주년 (1956. 5. 6)을 맞이 했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은 크게 기념축전을 갖는 등 온통 야단들이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정신분석에 관한 심포지움을 개최하는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통하여 그의 기술의 업적과 사상적 이론이 많이 소개되면서 고취된 바 있었다. 그 후 벌써 세월이 흘러 22년이나 지난 오늘날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의 기술과 사상이 잘 이해되고 소화되어 완전히 정착되는 입장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꾸준히 발전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프로이드」의 업적과 사상이 위대 하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리고 그가 이룩해논 방대한 업적을 추적 연구하느라고 바쁘게 지 내는 학도들도 많은 것 같지만, 그만한 위대한 업적을 쌓아올린 「프로이드」자신의 독특한 인품과 그의 생애 를 통한 비상한 노력과 고생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잘들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위대 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위대한 노력과 희생이 뒤따 르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본 연극의 작가 「헨리 덴커」는 자신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난 다음에 열심히 분석학 책을 탐독한 모양인데 그러던 중 분석학 지식의 추궁보다도 연극작가의 입장에서 「프로이드」의 인간성을 찾아보는데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프로이드」의 정신의학 연구의 초창기의 업적이며, 나중에 정신분석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데의 첫번째 초석(礎石)이 된 "히스테리” 연구의 내용을 횡 적인 소재로 삼아 이 연극을 쓴 것인데, 여기에서 그는 「프로이드」가 앞날이 청청한 의사로서 많은 반대와 조 소를 받아 가면서도 호된 시련과 희생을 무릅쓰고 자기 의 연구를 끈기있게 정력적으로, 또한 날카롭게 잘 밀 고 나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하여 「프로이드」는 그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를 리드해야만 했던 긴 인생드라마에서의 그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해내는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특히 그가 히스테리 환자를 연구하고 '소아성욕론'을 발표하기까지의 젊은 시절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어두운 동굴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꿈 장면과 환자들과의 면담 과정, 최면술 시술 등을 통해 프로이트의 개인사 및 직업에서의 위기와 극적인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사람
프로이트는 구체코슬로바키아의 프리볼에서 유태인 모직상 아들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1886년 빈에서 신경병원을 개업하고 많은 임상관찰을 통해 연구에 진력하여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존재를 설정하였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 (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J.브로이어와 공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1896년 이 치료법 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로이트 당대의 심리학자들은 의식의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프로이트는 그들과는 달리 '무의식(unconsciousness)'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심리장애는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갈등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무의식 속의 성적(性的) 및 공격적 충동들이 인간행동 의 동기적 요인이 된다는 것과 특히 아동기의 성적 충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프로이트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영향있는 인물 중 명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많은 학자로부터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무의식이 아무런 명확한 원인이 없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너무 쉽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성적 충동, 무의식, 초기 경험 의 중요성 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의 견해는 꿈, 창조, 동기, 발달, 성격, 그리고 심리요법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들은 심리학적 연구 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와 함께 프로이트의 생각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저서에는<히스테리의 연구>(1895)<꿈의 해석>(1900)<일상생활의 정신병리>(1904)<성(性)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토템과 터부>(1913)<정신분석입문>(1917)< 쾌감원칙의 피안 (彼岸)>(1920)<자아와 이드>(19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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