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페르난트 브루크너 '유년의 고통'

clint 2015. 11. 17. 22:00

 

 

 

 

 

 

 

'유년의 고통' 은 비엔나에 있는 하숙집을 근거로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바로 직후를 살아가는 의학도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중 몇몇의 졸업이 가까워지는 관계로, 그들은 전후독일의 성년의 삶이란 고통스런 사실과 그리고 전쟁이 남긴 엄청난 양의 절망, 환멸등과 직면하게 되었다.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마리에는 그녀의 젊은 애인이 아이린이란 여성과 사랑에 빠진 사실을 교활한 만년학생 프레더와 그녀의 멘토 알트에게서 듣게 된다. 슬픔 가운데 그녀는 가출한 귀족의 영애 데저레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마리에와 염세적인 데저레 이 두 커플의 불안한 동거는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한편 프레더는 순진하고 사랑스런 하녀 루씨를 끔찍한 캐릭터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마약과 술, 욕망과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결국 나찌의 출현을 만들어 낸 전후 독일의 정치, 사회, 경제적 토양 가운데 서있는 독일의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패전국으로서 어마어마한 전쟁보상금을 물리도록 한 베르사이유 조약은 독일인의 정치적 사회적 삶을 붕괴 시겼고 이어지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독일 중간계층을 파괴하였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급진적인 정치그룹의 호소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1933년경에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두개의 전체주의 정당 중 하나를 지지하게 되었으니, 공산당과 나찌당이였다. 유년의 고통의 캐릭터 중 아이린은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프레더는 어딘가 나찌 당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페트렐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보헤미안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들 모두는 희망을, 그리고 꺼꾸로 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이들 젊은이들에게는 젊은 그 자체가 치명적인 질병이다. 그들의 젊음의 위기가 사춘기의 불안 이상이 되는 순간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될 것이다. 포효하는 이십세기의 초입에서 이들 잃어버린 세대들이 느끼는 이러한 불안의 정체는 Robert Wohl이 말한 것처럼 테크날로지에 의해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에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도저히 당시의 시대적 윤리관이 포용할 수 없는 정도의 빠르기였다. 이들 젊은이들은 인생의 목표가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이빨과 발톱을 써야 했던 야만의 룰에 의존하는 동물적 본능을 거의 죽여 왔다고 믿도록 배웠다.

 

 

 

 

 

세계 1차 대전은 이들의 믿음을 산산 조각 내었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해 주겠다는 이들의 꿈은 하루에도 수천 명이 죽어나갔던 참호전투의 와중에 마치 농담과 같이 되어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들은 옛 윤리관의 망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유년의 고통은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있거라를 생각나게 한다. 캐터린은 전쟁에 참가해서 죽은 애인에게 순결을 바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고 있다. 그녀가 프레드릭을 만났을 때 즉시 그와 자게 되는데 그런 속도감은 그녀가 옛 윤리관이 정한 한계를 생각하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조급함이 유년의 고통 속의 캐릭터들에게도 보이고 있다. 작가 브르크너는 이러한 조급함을 조금 더 급진적으로 그리고 있다. 유년의 고통의 캐릭터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빠져 나갈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가 자살이다. 데저레는 종종 “확고한 시민이 되든지 자살해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결국 그녀는 최초의 상태가 되기 위해 자살이라는 리셋 버튼을 누르게 된다. 데저레의 죽음을 확인하고 마리에는 프레더를 자극하게 된다. 마리에 프레더 간의 욕망의 폭발은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프로이트가 말한 가장 큰 정신적 대리인들의 조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이런 폭력과 성적 과격함은 알트의 대사를 듣다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경박해져. 사람들을 막 대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발견해.” 이들 젊은이들은 마치 병속에 들어 있는 개구리들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세상에 갇혀 있다. 그래도 이들은 그 곳을 빠져 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죽음에 도달할 때 까지.

 

 

 

 

 

페르난트 브루크너
작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도르 태거라는 이름으로 19세기말에 태어났다.
브르크너는 극단적인 환멸과 염세주의가 전국을 뒤덮고 있어던 세계 1차 대전 기간 동안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시 시대상은 여러 희곡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작품들은 현실의 사회문제들을 정밀한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브르크너의 정체성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지 3인 이였는데, 그자신과 부인 그리고 후에 그의 작품을 연출한 막스 레인하르트 뿐이였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에 사회와 정신분석학의 대상으로서의 개인 양측에서 검열과 억압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그의 희곡들은 이런 암시를 반영하고 있다. '유년의 고통' 역시 이런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