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더 밀러 '대가' (박영희 역)

clint 2015. 11. 17. 18:44

 

 

 

 

 

이야기는 미루고 미루던 아버지의 집과 그 가구들을 처분하기 위해 빅터와 그의 부인 에스더가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빅터는 가구들을 처리할 때 받는 비용문제로 형인 월터와 상의하기 위해 몇 번이고 월터의 병원으로 연락을 해 보았지만 깜깜무소식이였다. 빅터와 월터 형제는 어렸을적 둘 다 장래가 유망한 학생들이었으나 아버지를 부양할 떄가 되자 월터는 떠나고, 빅터는 남아 아버지를 부양하게된다. 결국 월터는 성공하지만 빅터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경찰이 되면서 서로 연락을 끊기게 되었다.
결국 때가 되어 상의를 하지 못한 채 빅터는 가구을 처리하기 위해 업자를 불렀다. 업자인 솔로몬과 빅터는 이런저런 인생사와 얘기끝에 천백불에 가구를 팔기로 합의로 본다. 그 때 형인 월터가 예고없이 등장하였고, 형제는 재회한다. 재회의 감동도 잠시 가족은 가구의 금액에 대해 다시 상의한다. 그 속에서, 자신의 전화를 일주일동안 무시하던 형이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행동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빅터는 결국 먼저 얘기를 꺼낸다. 월터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얘기하며 빅터와의 화해를 원하지만 빅터는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옛날 형에게 학비를 빌리러 갔을 때 형은 아버지에게 빌리라며 거절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고, 파산 후 나약하고, 완전히 무너진 아버지인줄만 알았던 빅터는 실은 그의 학비를 대줄만큼의 여유가 있었고, 그저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끝내 두 형제는 화해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내 한마디 충고를 하리다.」'代價' (1968)에 나오는 늙은 가구상 그레고리 솔로몬은 말한다.
「문제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그래도 믿어야 한다는 거죠. 어려운 일이에요」
밀러 작 '대가'는 주제적 풍토를 배경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적대시하는 형제가 나오며 과거에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결혼에 실패한 어머니가 나오고 있다. '代價'에서 밀러는 두 형제 - 하나는 순경이고 또 하나 는 성공한 외과의 - 를 어떤 적갈색 돌집 위층에서 만나게 한다. 1929년 이전에 식구들이 살던 이 집에서 과거의 때 묻은 가구에 둘러싸여 형제는 오랜 동안 품어오던 서로에 대한 비난과 직면하게 된다. 지난 16년 동안 그들은 서로 만나지도 얘기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하나의 장황한 언쟁이며 일종의 상호 분석이다. 밀러의 치밀한 장면 구축에 의하여 관객이 형제들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공박 속에 말려들어 새 사실, 새로운 변경 사항, 새로운 고백이 드러날 때마다 이 형제 편을 들까, 저 형제 편을 들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이런 장광설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순경 빅터는 자기가 대학을 마칠 돈을 빌려주지 않은 월터, 파산하고 그 타격으로 신경쇠약이 된 아버지를 부양하라고 자기를 두고 가버린 월터를 책망한다. 월터는 빅터가 아버지가 적어도 재정적으로 그토록 절망 상태가 아니었던 것을 알았으며, 순경의 신분을 택한 것은 월터에게 죄의식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책망한다. 밀러는 이 작품에 대한 제작 노트에서 형제 역을 하는 데에는 「동정의 균형」이 주제 상으로 보나 극적으로 보나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관객의 동정을 사는 것은 재래식으로 착한 아들 빅터 (동기야 어찌 되었던 그는 아버지를 돌보았다)와 작중에 나오는 사회비판의 소리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야말로 주인공인 것이다. 연극이 시작될 때 감정적 마비상태에 빠져 있는 그는 경찰에서 은퇴할 결심을 못한다. 은퇴는 그와 아내가 일종의 새로운 출발로 한 때 생각했었던 일이었다. 자기의 과거가 무의미했으며 장래도 그보다 낳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행동하기를 주저하며 이러한 우유부단은 그의 결혼생활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그가 책임을 형과 아버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돌리려는 노력을 못하게 만든다. 그는 자기가 한 선택은 어느 모로 심리 상태와 사회적 환경의 우연한 결과였음을 자각하면서도 그 선택에 대한 代價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그의 자아발견의 결과로서 굉장한 계시적 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외식하고 영화를 보러 나갈 때 제복을 벗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며 이것은 그녀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미 과거에 묶이지 않게 된 그는 가구를 팔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검술용 마스크와 칼을 기념으로 가져가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이 극의 장점은 그레고리 솔로몬의 성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은 형제들의 언쟁 동안에 적당한 때를 맞추어 등장하여 끼어들어 작품을 독점하고, 극의 중심적 사건밖에 있을 때에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존재로 계속 머무른다. 구십이 다된 퇴직 세금감정가인 그는 가구 속에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 불신을 넘어선 믿음의 소산이란 생각을 구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밀러의 첫 번째 희극적 인물이며 월리 로만의 행복했던 옛날 장면에서 엿볼 수 있었던 가능성을 구체화시킨 인물이란 점이다. 솔로몬은 흔히 볼 수 있는 유태계 러시아인인데다 영악하고 수다스럽고 속담을 잘하는 구수한 노인이며 희화화를 모면하고 있다. 극의 끝에서 그는 가구만을 갖고 홀로 남게 된다. 그는 축음기를 틀어 관객도 이미 들은 바 있는 1920년대의 웃음의 레코드를 돌린다. 웃음소리가 시작되자 그 소리는 지금까지 작품이 표현한 내용에 대한 비판인 듯 일종의 새드닉한 양상을 띄운다. 그러나 솔로몬은 처음에는 조그맣게, 나중에는 크게 레코드와 함께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유성기 소리를 삼켜버리고 생명이 무대를 휩싸고'代價'는 단순 한 인간성의 설명이란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더 밀러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은 대개 곤란한 모순에 봉착한다. 밀러는 일류 극작가이다 - 평범한 작가이다. 밀러는 정직하다. - 위선적이고 부정직하다. 밀러는 깊이 심금을 울린다. - 감상적 말초신경을 건드려서 쉽사리 점수를 딴다.. 등등. 어찌 보면 밀러의 문제는 오닐의 문제를 소규모 화한 것과 같다. 兩者는 의심할 수 없는 재질과 심각한 결함의 혼합으로 우리를 골탕 먹이기 때문이다.<대가〉는 이와 같은 옥석혼합의 문제를 한꺼번에 제기하고 있다. 무대는 밀러의 영원한 시련 장이자 잃어버린 낙원이며 영원의 연옥인 가정이다. 두 형제는 16년의 불화 끝에 만난다. 빅터는 50세이다. 한때 그는 유망한 과학자였으나 공황 때문에 망한 아버지를 돕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바 있다. 그리하여 28 년 동안 경관 노릇을 해 왔다. 형인 월터는 성공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어떤 일이라도 용납하지 않았던 외과의이다. 아버지를 부양하는 데에도 그는 빅터에게 생색만의 도움을 주었을 뿐이며 빅터의 학업을 마치는데 필요한 오백불의 돈도 거부한 위인이다.
이제 두 형제는 만난다. 경사의 계급장을 달고 끊임없는 불만에 사랑과 진심을 붕괴시켜 버린 아내를 가진 빅터와, 고독하고 무의미한 생활 안정 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나이의 구부정하고 황폐한 조심성을 비쿠냐 모직의 저고리로 우아하게 감싼 월터. 그들이 만나는 곳은 여러 해 동안 닫쳐 있었던,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잔재인 낡은 가구들이 천정까지 들어찬 옛집이다. 네 번째 인물은 89세의 가구상인 솔로몬. 그는 형제의 과거의 짐올 평가하고 값을 매긴다. 막간 없이 진행 되는 이 극은 실재의 시간 속에서 움직여간다. 빅터는 옛집에 들어와 아버지가 한 때 앉았었던 붉은 벨벳의자를 살펴보고, 어머니가 타던 망가진 하프를 만져보고 낡은 손틀 유성기에다 판을 올려놓고 옛적 칼을 집어 검객의 자세를 삐걱거리는 마루에서 잡아본다. 뒤이어 그의 아내 에스터가 들어오고 두 사람은 악화된 그들의 관계를 재현한다. 그때 솔로몬이 당도하고 긴 한 막이 뒤 따르면서 밀러가 극작 생활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희극적 인물 솔로몬을 제시하여 때로 훌륭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솔로몬은 이 극의 1인 코러스이자 古典劇的 神이며 생존자로서의 조건인 반健全한 정신과 반 마키아벨리 的 지혜를 가진 늙은 장사꾼이며 교묘한 유태인의 상술로 인생과 씨름하여 무승부로 끝난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월터가 들어오는데 여기서부터 밀러는 자기가 즐겨 쓰는 예술 형식에 따라 나머지 극을 형성해 나간다. 피를 말리듯 괴로우면서도 짓궂은 해방감과 에너지의 폭발을 동반하는 가정불화, 그 미궁과 같은 경로와 썰매와 같은 관성, 자신과 남의 생활에 대한 확고한 이해 위에 갑자기 닥치는 捨轉과 轉換, 모두를 폭로하면서 어떤 설명도 不許하는 파괴적이면서 개운한 카타르시스를 따라 작품은 전개된다. 이 왁자지껄하고 부서지는 듯한 썰매타기 끝에 두 형제는 온갖 정당화의 유착된 상처를 뜯어 발기며 서로가 자기의 실패와 죄의식과 평생의 노여움을 설명하기 위해 키워온 자아 변명을 쳐부수고 만다.
밀러의 秀作들이 갖는 결함 있고 금이 간 듯한 힘은 이 죄의식의 力學과 論理에 대한 그의 통찰력으로부터 오고 있다.<대가〉는 바로 이러한 힘을 가졌으나 결함도 가지고 있다. 한 예술가가 죄의식을 다룰 때 다른 藝術的 상황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작가 자신의 인품과 인생이 그 작품 속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예술의 大家들은그런 상황 하에서는 무자비하게 자기 자신을 다뤄 왔다. 도가니는 미지근하게 김이나 낼 것이 아니라 들끓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은 마땅히 生과 死의 문제이어야 하며 또 그렇다. 스트린드베리, 카프카, 그리고 오닐까지도. 밀러의 힘이 못 미치는 영역에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파국을 향해, 작품에 있어서나 실생활에 있어서나 곧장 달려가며 이 두 가지는 종국에 가서 하나가 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온갖 인간적 이중성을 지닌 자신을 직면하며 그들이 발견한 바를 에누리하거나 희석시키는 일이 없다. 그러니까 많은 경우 그들이 실지로 파국에 이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그들이 경험하는 파국의 역학이야 말로 예술의 뼈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스트린드베리,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오닐이 마침내 도달한 편집적이고 반 광적인 작품은 고뇌하는 영혼의 극단적인 결과로부터 이 藝術家들이 형태와 힘을 창조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강력하다. 어느 면으로 보아 이것은 天才와 非 天才의 차이기도 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더 밀러는 자기 몫의 苦惱를 가진 사람이며 정신적인 고통을 꾸며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부를 그릴 수 있느냐, 아니면 전혀 되지 않느냐 이지 오락을 위해서 적당한데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다. 밀러는 그의 작품 속에서 水銀 방울처럼 굴러다니는 자기 연민이라는 粒子를 끝내 태워 없애지 못하고 있다. '代價'는 실지로 어떤 家庭 싸움과 같다. 가슴을 찌르는 진실을 말한 순간적인 기쁨 뒤에 허깨비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차디찬 식은 땀나는 우울이 밀어닥치고 곧 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하니 말이다.

 

 

 

아더 밀러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戰後 미국의 최대의 극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세일즈맨의 죽음’을 위시해서 그의 희곡 둥은 거의 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되었었는데 그만큼 밀러는 뛰어난 극작가가 별로 없던 전후 세계 연극계를 지배했던 작가이다. 그는 한때 극작활동을 중단했다가 (이 기간 동안에 마릴린 몬로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몰락 이후》로 다시 컴백, 《비쉬에서 일어 난 일》, 《대가》 등을 발표한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입센주의 적인 사실주의형식을 바탕으로 미국적인 상황 속에서 평범한 소시민이 겪는 비극을 통렬하게 그려 갔으며 그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적 비극과 상반되는 서민의 비극을 창조했다.

그의 후반기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할 만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대가》는 역시 전형적 인 입센주의 형식을 따르면서 《몰락이후》에서 다루었던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다만 여기에서는 전기의 작품들에서 보인 사회적인 문제는 사라지고 후기 작품들에 일관되는 주제, 즉 인생에 있어서의 죄와 책임의 대가 라는 도덕적인 주제가 더욱 심화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둥장 하는 솔로몬은 밀러의 인물 가운데 가장 잘 그려진 인물로 밀러가 희극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암기시켜 주었다..

 

 

 그의 희곡 '代價'는 입센적인 家庭 物로 구성 되어있다. 말하자면 이 作品은 발굴이라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부각시키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 극은 쉽사리 30년 전의 공황시대로 되돌아가기는 해도 전진은 불과 1분의 1인치 정도 밖에 하지 않고 있다. 또 그 많은 수다와 요설과 「왜, 왜, 왜?」를 되풀이한 끝에 발굴되는 것은 팅 빈 무덤인 것이다. 입센은 인간이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된 단서로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밀러는 현재가 과거를 드러내는 방식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한해서 서슴없이 쓰고 있으며 액션을 통해 극중의 살아 있는 사건들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공황시대를 더욱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代價〉는 다시 말해서 현재의 생활에 대한 극이라기보다 회고 극이라 함이 타당하겠다. 지난날에 대한 향수로 고동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향수는 낡은 램프, 망가진 하프, 兵器 類, 장롱, 의자, 탁자, 유성기로 꽉찬 다락방을 표현한 능숙한 세트 속에서 유발되며 연기자는 먼지에 묻힌 이런 물건들을 만지고 있을 때 가장 생생한 것이다. 이 방에서는 어면 일이 일어났었다. - 밀러가 이미 서너 번 썼던 일 -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실패에 대한 염려와 자기 나름의 생활을 이끌어 가려는 충동의 갈래에서 시달리는 두 아들이 끼어든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밀러가 이처럼 같은 상황설정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가 아직 그러한 상황을 규명해 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고 이 作品에서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극작가로서의 그는 强制的 反復性에 사로잡힌 듯이 보인다. 그래서<代價〉는 마치<세일즈맨의 죽음〉《모두가 내 아들들〉과<沒落以後〉의 복합체 같으며 같은 식구, 사랑과 돈 사이의 같은 兩極性, 체제에 대한 같은 완곡한 언급, 산문적인 대사를 앙양된 문체로 끌어올리려는 같은 미숙한 努力을 보여준다.
그러나 솔로몬이란 이름의 고물 가구 장사가 무대에 등장할 적마다 대사의 문체는 퍽 좋아지곤 한다.<代價〉에서는 보잘 것 없는 重要性 밖에 갖지 못하는 그는 그러나 이 작가가 만들어낸 가장 효과적 인물의 하나인 것이다. 이 솔로몬은 - 독창적이거나 심각하진 못하지만 - 나로서는 밀러가 앞으로 발전시켜 주기를 바라고 싶은 뜻밖의 喜劇性을 드러내고 있다. 警句를연발하고, 늙고 빈틈없이 흥정을 해내는 옛날 曲藝師 솔로몬은 장사를 무척 즐기며 확고한 신념으로 말미암아 작중에서 유일한 그럴듯한 대사를 말하고 있다. (「요즈음 허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2층에 올라가 창에서 뛰어내리는 일쯤이지」)
그런데 다른 인물들은 텔레비전 황금시대로부터의 도피자처럼 보이고 플롯 또한 불행하게도 그러하다. 경관인 빅터는 청년시절을 보냈던 다락방으로 돌아간다. 그 집은 저주받아 가구들은 - 한 때 부유했던 시절의 유물들은 - 팔기 위해 내놓았다. 가구의 매각은 그가 16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던 형인 외과의사 월터와의 만남이라는 위기를 가져온다. 공허한 美國的 성공의 대표자 월터는 빅터가 가난에 빠진 아버지를 돕기 위해 모든 기회를 저버렸을 때 利己的이게도 자신의 학업과 출세를 추구했었다. 월터의 성공은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최근에 이혼했고 신경쇠약에 걸려있다. 그는 빅터에게 자기 의료원의 행정직을 제공하나 빅터는 그런 은혜받기를 거절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월터는 빅터가 가구에 대해 생각해낸 유리한 납세절약법을 물리쳐 버린다. 일련의 논쟁은 마침내 빅터의 자기희생은 허사였고 월터는 남이 생각하리만큼 이기적이 아님을 드러낸다. 형제는 싸움의 화해하지 못한 채 가구가 드러낸 사실들에 의해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해어진다.
연기에 쓰이는 말에 감정의 구체화를 의미하는 指示란 말이 있다. 이것은 (代價〉의 作法을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미리 신호로 알려지고 클라이맥스는 군더더기가 붙고 퇴장은 자연스런 떠나감이라기보다 박수를 칠 때에 맞추어놓은 듯하다. 작가가 지시할 때 연기자가 그 지시를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능한 연기자가 기계적이고 설득력이 박약한 연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연극은 한 마디로 진지하지가 않다. 엄숙하고 단호한 것이지만 진지하지가 못하다. 진지한 극은 인물의 생활을 그리는데 있어서 관객의 생활까지 설명해주고 그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는 영상들을 제공하는 법이다. 그러나 《代價〉는 현대의 관객이 자기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어떠한 관심사와도 실질적으로 단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희극적 성격이 나올 때 밀러는 잠시 진지해지며 웃음이 哀調보다도 리얼리티에 이르는 첩경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심각한 外樣만을 보여줄 뿐 그 뒤에 의미가 있는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 익숙한 정경을 보여 주기보다는 감추고 서있는 건물처럼 - 그리고 그러한 놀음을 가리켜 도피주의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