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닐은 그의 예술적 비전의 발아기 산물인 이들 해양극에서부터 표현주의 기법을 도입하여
다양한 상징과 음향효과를 이용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출시켰다.
"카브리섬의 달"은 극장의 전통과 단절된 최초의 작품이라고 말하로 있는데 전통과의
단절이란 이 극이 풀롯이나 액션을 무시하고 순수한 시적 기분의 창조에 집중한 데 있다.
"카브리섬의 달"의 액션은 중요하지 않다. 갑판 위에 있는 일단의 수부들은 럼주와
여자들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하고 말다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도착하자 그들의 대화나 언쟁은 격해지고 싸움이 시작되고 한 수부가 칼을 빼
찌르고 항해사들이 끼여들게 되고 럼주와 여자들은 쫓겨난다.
지루한 일과는 잠시 깨어지지만 로맨스는 끝난다.
단지 달칩과 멀리서 들리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한 음악의 메라이만 남는다.
오닐은 "카브리섬의 달"을 자기의 단막극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이 작품을 귀하게 여긴 것은 더 효과적으로 기분과 감정 그리고 성격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작품이 형식적 액션을 배제함으로써 상업극의 전통과의 관계를 끊었기 때문이다.

유진 오닐의 카리브 섬의 달은 바다를 떠돌아 다니는 선원들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무슨 거대한 이념이나 작가가 보여주려고 의도한 목적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룻밤 새에 벌어지는 선원들이 술먹고 여자와 놀다가 싸움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격으로 보이는 스미티의 회한이 담긴 듯한 센치한 모습을 부각한다.
술에 취해서 추태를 보이는 하급 선원들의 모습이 그의 그런 정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스미티가 뭔가 슬픈 과거를 가진 듯 냄새를 풍기지만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영화에서 도시의 밤거리를 카메라로 조용히 훑는 것처럼 선원들의 일상을 따라가다가
스미티가 등장하면 카메라를 멈추고 그의 고독한 입매를 클로즈업하는 식이다.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이렇게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되 천박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도록
내부에 숨겨진 주제를 독자에게 넌지시 드러낸다.
현대 문학에서 강조되는 보여주기 수법이다. 설명이 아닌 묘사이고 말이다.
때문에 극을 따라가다 보면 어라 이런 얘기가 뭐 어쩌겠다는 거지? 그래서 어쩄다는 거야?
싶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서서히 숨겨진 구조가 드러나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선원들의 하룻밤 술판을 통해 불러일으켜 진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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